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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릉(仁陵, 사적),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인릉(仁陵, 사적)이다.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이다. 외관상으로 하나의 봉분에 혼유석이 1개만 설치되어 있는 단릉으로 보이지만 왕과 왕비가 같이 묻힌 합장릉이다. 병풍석은 없이 난간석만 둘러싸여 있다. 석물 배치 또한 일반적인 왕릉과 큰 차이가 없는 정형화된 조선후기 왕릉이다. 원래 순조의 능은 파주 교하에 조성되었는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철종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순원왕후는 능이 이곳으로 이장된 이후에 합장되었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정조 사후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순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정조의 개혁적인 조치를 되돌리는 복고적인 정치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천주교를 탄압하고 세도정치가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등 조선후기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문란한 사회상이 시작되었던 시기이다. 재위기간은 34년으로 상당히 긴 편이지만, 큰 업적을 남기는 못하고 정치적 영향력 또한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 인릉(사적)>

조선 23대 순조의 인릉이다. 부근에는 조선왕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태종의  헌릉이 있고, 조선을 대표하는 군주인 세종대왕의 능도 있었으며, 문종도 이곳에 능역을 조성할려고 했던 곳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이후 왕의 장자들이 일찍 요절하는 등 좋지 않은 일이 많아서 세종의 영릉은 여주로 옮겼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왕들은 이 곳에 능을 조성하지 않았는데, 조선후기 왕의 권위가 가장 크게 떨어졌던 철종 때 파주에 있던 순조의 능을 이곳으로 옮겼다.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구한말의 권문세가들의 조선왕실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보이기도 하는 곳이다.

<인릉 입구 홍살문>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정자각 월대를 오르는 계단>

<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정자각 정전>

<정자각 옆 비각>

순조는 대한제국 선포이후 황제로 추존되었기 때문에 2기의 표석이 있다.

<순조와 순원왕후의 합장릉>

봉분 주위에 병풍석을 두지 않고 난간만 둘렀다.

<왕릉 앞 석물>

석물들은 조선후기 정형화된 양식을 하고 있다.

<봉분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

<서초구 내곡동 헌릉 인릉 입구>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서울 헌릉.인릉, 사적,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릉에는 조선 3대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를 모신 헌릉과 제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를 모신 인릉이 있다. 태종은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고, 정종 2년(1400)에 세자가 되었으며, 같은 해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18년(1418)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종 4년(1422)에 56세로 돌아가셨다.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 공민왕 14년(1790)에 태어나 정종 2년(1400) 정빈에 책봉되고, 정비가 되었으며 56세로 돌아가셨다. 순조는 정조 14년(1790)에 태어나 11세에 왕위에 올랐고, 재위 34년(1834)에 45세로 돌아가셨다. 순원왕후는 정조13년(1789)에 태어나 순조 2년(1802)에 왕비가 되었고, 철종 8년(1857)에 69세로 돌아가셨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