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유릉(裕陵, 사적)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 순정효황후 윤씨를 합장한 왕릉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조성된 왕릉이다. 왕의 장례식인 국장은 새로 즉위한 왕이 주관해야 하지만, 순종의 장례식은 당시 이왕직 장관이었던 민영기가 주관하였다. 황제의 예우에 맞추어 고종의 홍릉과 거의 비슷하게 조성하였다. 석물들을 현대 조각상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등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나 일제가 영향을 미친 부분이 많은 왕릉이기도 하다. 순종의 능을 조성한 이후 서울 광진구 유강원에 있던 순명효왕후를 함께 모셔 합장하였다. 순정효황후는 1966년에 돌아가시면서 이곳에 합장되었기 때문에 왕릉조성에 대한민국 정부의 손길이 미친 유일한 왕릉이다.
유릉은 기존 왕릉과는 달리 제례시설인 정자각 대신 ‘-‘형 침전을 세우고, 봉분 주위에 있던 문.무인석을 비롯한 석상들을 침전 앞으로 옮겼다. 석물 중 석호와 석양은 없어지고 대신 중국 등의 영향을 받아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이 문.무석인과 함께 참도 양쪽에 도열하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참도 또한 신도,어도로 구성되어 있던 것을 삼도의 형식으로 바뀌었다. 침전 월대의 계단 또한 가운데 3개, 양쪽에 2개씩 놓여 있다.
<순종의 유릉(사적)>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유릉(사적). 일제강점기 이왕직장관이 주관하여 일제의 영향아래 조성된 왕릉이다. 1966년 순정효황후가 이곳에 묻힘으로써 대한민국 정부가 관여한 유일한 왕릉이기도 하다.
<홍살문>
일반 왕릉의 홍살문고 큰 차이는 없다.
<홍살문에서 침전으로 이어지는 참도>
황제의 격에 맞게 삼도로 구성되어 있다.
<참도 양쪽에 도열하고 있는 석상>
왕릉 봉분 주위에 세워져 있는 석물들이 침전 앞으로 옮겨져 있다. 석양, 석호는 없어지고 문.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의 형상을 간략해서 묘사한 기존 석물과는 달리 일제는 서양식 조각수법을 반영해서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각상을 세우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침전 월대에서 내려다 본 참도와 양쪽에 도열해 있는 석상>
<유릉 침전>
기존 왕릉의 산릉제례 시설인 정자각과는 달리 왕이 머무는 숙소라는 개념의 침전이 왕릉 앞에 있다. 침전은 앞면 5칸의 큰 건물로 사당에서 주로 사용하는 맞배지붕 대신 궁궐전각처럼 팔작지붕을 사용하고 있다. 정자각과는 달리 월대 전면에 3개의 계단이 있다.
<유릉 침전 내부>
정자각과는 달리 왕이 머무는 닫집이 내부에 있다.
<침천 앞에 세워진 비각>
침전
이 건물은 조선 제27대 순종황제의 신위를 모신 제전이다. 중국을 섬기는 제후 국가의 예에 따라 만들어진 조선 역대의 건물과는 건물의 형식과 규모가 다르다. 즉 종래의 ‘丁’자 모양의 정자각 대신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을 지었으며 그 앞 양쪽에는 문관과 무관 모습의 문무석이 서 있다. 그 곳부터 지붕없이 붉은 살을 박고 붉을 칠을 해서 만든 문까지는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모양의 돌조각을 만들어 순서대로 배치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유릉 봉분>
순종황제와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가 하나의 봉분에 합장되어 있다. 순정효황후가 1966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현재의 봉분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재궁>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기존 왕릉과는 달리 홍살문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수복방>
기존 왕릉에는 없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홍살문 옆쪽에 있는 어정(御井)>
제사를 준비하는시설이다.
<금천과 금천교>
<홍릉과 유릉 사이에 위치한 연못>
조선의 연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따라 연못은 사각형으로, 섬은 둥글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이곳은 연못도 둥글고 섬도 둥글게 조성해 놓고 있다.
순종 승하와 6.10 만세운동
1926년 4월25일 순종이 창덕궁에서 돌아가시자 많은 민중이 순종의 인산일인 6월10일에 서울로 운집하였다. 그리고 순종의 발인행렬을 쫓아 학생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선언문을 뿌렸다. 1926년의 6.10만세운동은 1919년 3.1운동처럼 황제의 인산일을 기점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으로, 대한제국의 쇠망과 황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민중의 모습과 조선의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민중의 의지가 표출된 역사적 사건이다. <출처:문화재청>
<순종 국장 기념 사진첩, 1926년>
조선의 마지막 국장이라 할 수 있는 순종의 국장 사진이다.
남양주 유릉, 사적,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유릉은 조선 27대 왕이자 대한제국 2대 황제인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를 모신 능으로,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세 분을 하나의 봉분에 모시고 있다. 순종(1874~1726)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로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며, 1907년 대한제국 제2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순종은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과 강제로 병합되면서 황제의 자리에 물러났으며, 1926년 창덕궁에서 돌아가셨다. 순종의 승하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항일운동인 6.10만세 운동이 일어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순종의 첫 번째 황후인 순명효황후(1872~1904)는 1904년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순명효황후의 무덤은 본래 서울시 광진구 지역에 유강원으로 조성되었고, 순종 승하 후 경기도 남양주에 유릉을 새로 조성하면서 함께 모셔지게 되었다. 순종의 두 번째 황후인 순정효황후(1894~1966)는 1906년 황태자비로 책봉되고, 1907년 순종 황제 즉위화 함께 황후로 책봉되었다. 순정효황후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를 겪다가 1966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돌아가셨으며, 현재 유릉의 마지막 안장자가 되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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