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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고려석탑 양식이 남아 있는 조선초기 다층석탑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낙산사에 있는 칠층석탑(보물)이다. 낙산사를 창건한 통일신라 때 삼층석탑을 조선초 세조가 중건하면서 칠층석탑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고려 석탑 양식이 적용된 석탑이다. 기단부는 정사각형으로 지대석이 놓여 있는데 윗면에 겹연꽃 무늬를 장식하고 있으며, 탑신부는 조선시대 다층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상륜부에는 청동 복발.보륜 등을 장식하고 있다. 상륜부 형식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라마탑과 닮은 장식들의 거의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인근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양식적으로 비슷하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남해 보리암, 서해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이자 관음도량이다. 통일신라 때 크게 중건한 이후 여러차례 중건되었으며, 2005년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된 후 새로 중건되었다. 경내에는 세조 때 세운 7층석탑과 홍예문 등이 남아 있다. 낙산사 아래 해안가에는 의상대사가 참선했던 장소인 의상대와 해안 절벽에 세워진 작은 암자인 홍련암이 있다.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낙산사 주불전인 원통보전 앞에 세워져 있는 칠층석탑이다. 조선초 낙산사를 크게 중건할 때 칠층으로 다시 조성된 것으로 고려석탑 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옆에서 본 모습>

2층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고려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간략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단부>

연꽃문양이 새겨진 기단부. 고려석탑 양식이 남아 있는 부분이다.

<탑신부>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낮게 만들었으며, 특별한 장식이 없는 간략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장식>

머리장식에는 원나라의 라마탑(喇嘛塔)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앞에서 본 모습>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보물,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이 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念珠)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음으로써 천여년간 국교로 자리잡고 있었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불교와 관련된 조형 미술의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조선 전기에는 불교미술 분야에서 조성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적인 작품이 다소 조성되었다. 낙산사7층석탑도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탑의 받침이 되는 기단부(基壇部)는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밑돌을 놓았는데 윗면에 24잎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지붕돌과 몸돌을 1층으로 하여 7층을 이루고 있다. 각 층의 몸돌 아래로는 몸돌보다 넓고 두꺼운 괴임이 1단씩 있어 특징적이다. 지붕돌은 경사면이 평탄하며 네 귀퉁이의 들림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인 모양이 경쾌하다. 탑의 또 다른 특징이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 되었다. 강릉 신복사지삼층석탑·월정사팔각구층석탑 등의 탑신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