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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과 서양식 정원

덕수궁 석조전은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1910년에 처음 세워진 이래로 서울을 대표하는 서양식 건축물이었다. 이 건물은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궁궐 전각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영국인 건축가 하딩(G,R, Harding)이 설계한 건축물이. 건물은 기단 위에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우고 중앙에 삼각형의 박공지방을 얹었는데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 전면에 베란다를 설치하여 궁궐 주변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관은 1937년 이왕직박물관로 지은 건물로 중앙에 코린트식 기둥의 현관을 덧붙여 놓고 있다.

<덕수궁 석조전과 정원>

석조전은 국왕의 침전 겸 편전으로 지어진 건물로 1층은 거실, 2층은 접견실 및 홀, 3층은 침실, 거실 등 생활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형적인 19세기 유럽의 상류층 저택과 궁궐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이다. 석조전은 1938년 서관이 지어지면서 박물관 및 미술관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미소공동관리위원회 및 유엔 한국위원단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국립박물관, 국립 현대 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해 왔다. 편전과 침전으로 사용했던 동관은 2009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14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건물 규모는 실제 유럽이나 미국 등의 유명 건물에 비해서는 왜소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주었던 서양식 건물이기는 하다. 그래서 대학건물 등 덕수궁 석조전을 본 떠서 많은 건물들이 우리나라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한 많은 사진에 등장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던 건물이 덕수궁 석조전이다.

<왼쪽에서 본 모습>

<오른쪽에서 본 모습>

현관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이오니아식 기둥과 그 위에 삼각형 구조를 하고 있다.

<중앙의 삼각형 박공지붕>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오얏나무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건물 왼쪽편>

양쪽에는 사각형의 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보를 받치는 구조에 장식적인 효과를 주는 이오니아식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19세기에 많이 지어진 서양의 신고전주의 형식으로 지어진 석조전은 넓은 테라스를 두고 있어 궁전내부를 감상하기에 좋다.

<덕수궁 석조전과 그 앞에 조성된 서양식 정원>

<편전인 석어당 앞 마당에서 본 모습>

이 건물의 설계를 영국인 건축가가 했던 까닭에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건물 앞의 정원도 영국식 정원풍이 많이 있다. 19세기에 서양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신고전주의양식으로 지은 건물로 기단 위에 이오니아식 기둥을 줄지어 세우고 중앙에 삼각형의 박공지붕을 얹었다. 건물의 규모는 한옥을 기준으로 하면 중앙 5칸, 양쪽에 6칸씩 총 17칸에 이르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고종이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건물로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연못과 분수대>

<석조전 앞 해시계>

<석조전 서관>

서관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이왕직박물관으로 지은 건물로 동관과 함께 국립박물관, 궁중박물관 등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 본관은 1898년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여 1909년에 건립된 서양식 건축물이다.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고종황제의 처소 및 접견 등의 공간으로 사용되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이왕가미술관으로 전용, 석조전 서관 준공에 맞추어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이왕가미술관 근대미술품진열관으로 사용, 해방이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및 유엔 한국위원단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전쟁때 훼손된 것을 육군공병단이 수리하여 1955년부터 1972년까지 국립박물관, 1973년부터 198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1987년부터 2004년까지는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건립 후 다양한 용도로 내부공간이 활용되면서 당초 모습이 변형되어, 원형을 찾아 복원할 예정이다. <출처:덕수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