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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고대상감] 상감기법의 전승

통일신라 이후 금속의 상감기법은 재질의 색상 차이를 이용하여 선과 면으로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문양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금속공예가 일상생활 용구나 불교 공예품등에 많이 활용된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고려시대 불교공양구에는 화려하면서 뛰어난 금속가공 기술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물들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불교공예품보다는 실생활에 사용된 여러 기물에 금속공예가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상감기법을 사용한 다양한 기물들이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4. 전승, 통일신라 이후의 상감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금속의 상감기법은 금과 은의 색감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선과 면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기물에 세련된 문양 표현을 구사하였으며, 이를 통해 적재적소에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는 등 금속 공예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고려시대가 되면 철제 상감거울걸이나 대야와 같이 생활 기물도 있으나 당시 불교의 성행에 따라 불교 공예품,그 중에서도 공양구를 중심으로 많은 수의 기물이 제작되었다. 향완에 남아 있는 명문을 통해 볼 때 바탕 재질은 주조로 제작되었고, 여기에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넣은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는 보다 실생활과 밀접한 상감 기물들이 다수 제작되었고 상대적으로 불교 공예품은 크게 감소하게 된다. 제작 기법에 있어서도 바탕 재질이 철로 대체되어 가는 경향이 확인된다. 기술적으로는 기존에 유행했던 선상감, 면상감 위주에서 철제기물에 쪼듬입사하는 기법이 도입되어 크게 유행되었다. <출처: 공주박물관>

금은상감단지, 통일신라,

둥근 바닥의 작은 단지로 청동 기면에 금사로 상감하고 은으로 면을 채워 장식했다. 기면에는 3부분의 타원형 구획을 두고, 그 안에 신성한 나무와 동물로 보이는 수하쌍조(樹下雙鳥), 수하쌍수(樹下雙獸) 무늬를 새겼다. 이들 문양은 서역에서 기원하여 중국으로 유입된 문양이다. 특히 당대에 크게 유행하였고, 통일신라에 수용되어 금속공예품 뿐만 아니라 와전 등의 문양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어깨 부분에 금사를 이용해 초화문과 운문을 상감했다. <출처: 공주박물관>

금상감 발걸이, 고려,

납상감 신선무늬 화장품단지, 조선

칼코등이, 부소산성 지표수습, 은입사태극문자물쇠

은상감거울걸이, 고려, 은삼감거울걸이편, 고려, 부여 관북리

거울을 고정하여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고안된 거울걸이는 고려시대 화장용구로, 동경이 다양하게 제작.사용되면서 함께 유행했다. ‘ㅍ’자 형태의 사각틀 2개를 교차시켜 접이식으로 만들어 실용성 높게 고안되었다. 뿐만 아니라 앞쪽 틀보다 뒤쪽 틀을 더 높게 제작해 거울 뒤쪽 중앙의 꼭지에 거울을 매달면 앉아서 보기 좋게 각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해 편리성을 더했다. 이러한 형태의 거울걸이는 중국 송(宋)대 이후 목재나 석재로 제작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들어와 화려하게 장식된다. 철 바탕면에 은선을 이용해 동심원을 연속 배치하여 상감했고 타출된 장식판으로 가장자리 부분을 마감했다. <출처: 공주박물관>


은입사여의, 조선


은.동입사 촛대, 조선


삼인검, 조선,

검신의 한 면에 북두칠성을 상감했다. 자루에는 은입사한 당초문 바탕에 ‘三寅劍’이라는 글씨가 상감되어 있다. 상인검은 연.월.일 새 개의 인(寅)을 갖춘 벽사용 검이다. 사인검, 조선, 연.월.일.시가 모둔 인(寅)일 때 만드는 칼이다. 칼날의 한 면에는 북두칠성과 28수 천문도가, 다른 면에는 검결(劍訣) 27자가 상감되어 있다.


칼몸에 새겨진 별자리

은상감대야,

중앙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상감하고 전면에는 당초문과 기하문을 장식했다. 이 대야는 사찰에서 의식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5. 공유, 전통을 이어온 상감기술
백번이나 단련된 강철로 만들어 왜왕에게 하사했다는 칠지도가 제작된 것은 369년이다. 백제는 기원 전후 낙랑을 통해 중원과 북방의 상감 제작 기술을 접하고, 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5세기가 되면 백제화된 상감 기법을 구현하게 된다. 상감 제작 기술은 난이도 높은 기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으로 요약될 만큼 최고의 기술로 언급된다. 백제 상감 기술이 최고의 기술이 될 수 이었던 것은 중원과 북방을 가리지 않고 수용해 백제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이를 가야.신라.왜에 공유했던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창조’와 ‘공유’의 정신이 살아 있는 백제의 상감 기술이야말로 ‘최고의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상감공예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와 각 시.도 무형문화재 등 소수의 장인들에 의해 전승.계승되어 오고 있다. 이는 상감 기술의 제작 공정이 어려워 다양한 공예품 제작에 활용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 공예기법은 오랜 역사를 두고 계승.발전되어 온 우리의 문화이며, 현대 금속 공예의 발전에도 밑거름이 되었다. 저어 하나로 선에서부터 면, 회화적 표현까지도 가능했던 상감은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성과 아울러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에 앞으로 현대 금속 공예 발전을 위해 더욱 계승.발전시켜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상감 기술이 갖고 있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적 본질을 익히는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대인에게 맞는 미적 감각을 수용한다면 백제 장인이 실천했던 ‘창조’와 ‘공유’의 정신은 현대에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공주박물관>

백금상감 청동향로, 현대, 은상감 청동합, 김용운 상감장(대구 무형문화재), 은상감 매죽문 청동항아리, 현대, 은상감 청동차통.금상감 은차통, 현대, 백금.금상감 청동정병, 현대

상감공예 도구, 현대

일본도, 현대

<출처>
1. 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