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 초기철기시대 유적지이다. 이곳에는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은 쌍두령, 팔두령 등 여러점의 청동기유물(국보)이 출토된 곳이다. 1971년 마을주민이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두차례의 발굴.조사과정에서 통나무관을 사용한 적석목관묘로 추정되는 무덤을 확인하였다. 1971년에 세형동검 3점, 청동도끼 1점, 청동손칼 1점, 잔무늬거울 2점, 청동팔령구 2점, 청동쌍령구 2점이 출토되었으며, 2008년에 세형동검 2점이 추가로 출토되었다.
대곡리유적지는 화순 일대의 하천들이 영산강의 큰 지류인 지석천에 합류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나주에서 능주를 거쳐 보성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석천 주변으로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선사시대부터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지역이다. 부근에는 청동기시대 무덤유적인 화순 고인돌(사적)을 비롯하여 많은 고인돌과 무덤들이 분포하고 있다. 출토된 유물들은 이 지역이 호남지역 청동기문화의 중심지 중 한 곳이었음 보여준다.
<화순 대곡리 유적지>
영산강 지류인 지석천과 주변의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나즈막한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이 발견된 지점 부근>
이곳에 1971년 주민이 집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청동기시대 유물 11점이 발견되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변 풍경(북쪽)>
멀리 광주 무등산 일대가 보인다.
<유적지 서쪽>
지석천이 남평을 지나서 영산강과 합류한다.
<유적지 앞을 지나가는 도로>
나주에서 능주를 거쳐 보성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다.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
<마을길>
좁은 마을길을 따라 100여 m 들어가면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파란색 지붕을 하고 있는 집 부근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
<유적지 남쪽>
남쪽 산너머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화순 고인돌 유적지(사적, 유네스코문화유산)가 있다.
<동쪽편 큰 길에서 보이는 유적지>
<출토 유물>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유물 13점이다. 세형동검 2점은 2008년 발굴.조사과정에서 추가로 발견되었다.
<청동팔령구(국립광주박물관 전시)>
불가사리 모양을 하고 있는 청동방울로 8개의 방울이 달려 있다고 해서 팔령구라고 한다. 청동기시대 한반도의 샤머니즘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여겨진다.
<청동쌍령구(오른쪽)>
2개의 방울이 달려 있는 청동기이다. 팔령구와 함께 주술적·종교적인 의식용 도구로 짐작된다.
<6. 시루.>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유물로 1971년 화순 대곡리에서 출토되었다.
<7. 단지, 1971년 화순 대곡리 발굴>
<10. 귀때토기. 1971년 화순 대곡리 발굴>
화순 대곡리 청동유물 출토지, 국보,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화순 대곡리 청동유물은 1971년 8월 이곳에 사는 구재천씨가 처마밑에 물길을 내려고 땅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유물이 출토된 곳은 수혈식석곽묘로 세형동검(3), 잔무늬청동거울(2), 청동팔주령(2), 청동쌍두령(2), 청동조각칼(1), 어깨있는 동도끼(1) 등 11점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청동일괄유물은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중심지가 평양과 경주지구 뿐만 아니라 금강유역, 화순 대곡리, 함평 초포리 등 영산강 유역에 걸친 호남지구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청동거울, 팔주령, 쌍두령, 기타 특수청동제품은 실제 사용하기 보다는 몸에 지님으로써 권위의 상징 또는 어떤 주술적인 성격을 내표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며 유물이 출토된 무덤의 주인공이 원시 샤마니즘에 입각한 사제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출토된 유물은 1972년 3월 국보 143호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 문화재청
- 두산백과
-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답글 남기기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