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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홍법국사탑비(보물)이다. 홍법국사탑과 함께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석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와 고려초기 탑비의 형식을 하고 있다. 용의 얼굴을 한 거북받침돌은 생동감있는 표현되었으며, 머릿돌에 새겨진 용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며 힘이 넘치는 조각수법이 특징이다. 비의 앞면에는 홍법국사의 행적이,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는데 마모가 심하여 지금은 알아보기 힘들다. 고려초인 1017년에 세워졌다.

홍법(弘法, ?~?)국사는 고려초에 활동한 승려로 당나라에 유학했으며 말년에 충주 정토사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탑비에 적힌 글자의 마모가 심해 알아보기 힘들어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는 편이다. 고려 목종으로부터 홍법이라는 시호와 실상(實相)이라는 탑호를 받았다. 그의 사리를 모신 승탑(국보)도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그가 머물렀던 정토사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으며, 절터에 있던 법경대사탑비(보물)는 인근 마을에 옮겨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홍법국사탑비(보물)>


<오른쪽에서 본 모습>

용의 얼굴을 한 거북받침돌 위에 탑비를 올려 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생동감있게 표현된 세부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비석을 받치고 있는 거북받침돌>

세부 표현은 양호하지만 정형화된 통일신라말 이후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뒤에서 본 거북받침돌>

<머릿돌>

정형화된 모습의 거북받침돌과는 달리 머릿돌에 조각된 용의 모습은 섬세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가운데에  ‘實相之塔(실상지탑)’이라 적힌 국왕이 내린 탑의 이름이 적혀 있다.

<뒤에서 본 머릿돌>

섬세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돋보인다.

<비몸>

비몸에는 홍법국사의 행적을 적고 있으나 글자가 심하게 닳아 판독하기 쉽지 않다. 윗쪽에 탑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뒷편>

비석 뒷편에는 홍법국사 제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심하게 닳아 판도이 쉽지 않다.


<옆에서 본 모습>

<탑과 탑비>

홍법국사탑(국보)과 함께 최근에 보수작업이 완료되어 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다.

<충주 정토사지>

흥법국사탑과 탑비가 있던 충주 정토사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어 현재는 찾아가 볼 수 없다.

<절터 인근 마을>

절터에 있던 법경대사탑비(보물)와 절터에서 출토된 건축부재들은 인근 마을에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충북 충주시 정토사터, 고려 1017년, 보물
비의 앞면에는 홍법국사의 행적이,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해서로 적혀 있다. 홍법국사가 정토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고려 목종은 실상(實相)이라는 탑명을 내리고 1017년 손몽주에게 비의 글을 짓도록 하였다. 받침돌에 거북 머리 대신 용의 머리를 조각하는 것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출처>

  1. 중앙박물관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