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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설악산 백담사, 내설악을 대표하는 사찰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사찰인 백담사(百潭寺)이다. 설악산 내설악에 대표하는 사찰로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한계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차례 중수를 거듭하면서 이름이 바뀌었으며 조선 정조 때 중건하면서 백담사로 이름 바꾸었다.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이곳에서 입산수도하였으며, 최근 5공청산 과정에서 전두환씨가 이곳에 머물때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부속암자로는 적멸보궁이 있는 봉정암을 비롯하여 오세암, 영시암 등이 있으며,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많은 부속암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백담사는 마을이 있는 용대리에서 4 km 이상 떨어진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비교적 넓은 평지가 있는 곳으로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봉정암과 마등령을 넘어 외설악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수행을 위한 공간인 요사채를 많이 두고 있지만 불전인 극락전과 작은 요사채가 있었던 암자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중 사찰답게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전을 주불전으로 하고 있으며, 수행도량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나한전을 두고 있으며, 작은 규모이 산령각이 있다. 주불전 앞에는 작은 요사채인 법화실과 화엄실이 있다. 주불전 양쪽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내설악을 대표하는 사찰인 백담사>

내설악을 흐르는 영실천이 작은 평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가까운 용대리마을에서 4 km 이상 떨어진 깊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다.

<백담사 가람 배치>

가운데에 주불전인 극락전과 작은 요사채가 있고, 그 양쪽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수행공간인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일주문>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

<영실천 계곡과 설악산>

<경내를 출입하는 금강문>

<불이문>

금강문을 들어서면 작은 솟을삼문인 불이문이 있다. 공간을 분리하는 담장을 두고 있지 않다.

<주불전이 있는 공간>

극락전을 중심으로 작은 요사채가 세워져 있다. 설악산 깊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지만 평지사찰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주불전인 극락전>

자장율사가 한계사를 창건했을 때 아미타여래를 모신 불전을 두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극락전을 주불전으로 하고 있다. 앞면 5칸의 비교적 큰 규모의 불전으로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극락전 내부>

<극락전 앞 마당>

가운데에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양쪽에 요사채가 있다. 마당을 넓게 쓰고 있지 않으며, 원래 작은 암자 규모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전 앞 요사채인 화엄실>

부엌이 있는 살림집 형태를 하고 있다. 1980년대 말 전두환씨가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전두환씨 부부가 머물렀다는 방>

<맞은편에 있는 요사채인 법화실>

<극락전 옆 나한전>

석가모니의 제자를 모신 불전으로 수행을 중시하는 백담사의 특징을 보여준다.

<나한전 앞 마당>

만해기념관을 비롯하여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만해 한용운 흉상>

<만해기념관>

백담사에서 수행했던 만해 한용운을 기념하는 기념관이다.

<만해기념관 내부>

<범종각>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뒷편으로도 여러동의 큰 요사채가 있다.

<산령각>

<극락전 오른쪽 공간>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들이 있다. 내설악과 백담사를 찾은 신도를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만해교육관>

<만해교육관 뒷편 요사채들>

<휴게소>

백담사를 찾은 신도들이나 등산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다리 위쪽 백담사 들어가는 길>

<백담사 들어가는 다리>

개천에는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쌓은 돌탑들이 보인다.

백담사(百潭寺)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사찰로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서기 647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 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였다. 한계사로 창건 후 1772년(영조 51)까지 운훙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수 많은 운수납자가 불원천리하고 이 곳 백담사 계곡을 찾아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의 맑은 물에 객진번뇌를 털어내고 설악영봉이 푸른 구름을 벗 삼아 출격장부의 기상을 다듬던 선불장이었다.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부속암자로서 유지만 남아 있는 곳으로 동암, 원명암, 백련암, 축성암 등 8개의 암자가 있었다. 만해 한용운(1879~1944년) 선사는 1905년 이 곳 백담사에서 삭발염의하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론』과 『십현담주해』를 집필하고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는 등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일제의 민족 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독립운동의 유적지로서도 유명하다. 현재 백담사에는 극락보전, 나한전, 법화실, 화엄실, 산령각 등 5개동의 기존건물 외에 일주문, 금강문, 무설전, 완허당, 봉정당, 각일당, 검인당의 수행공간이 있으며, 만해 한용운 선사의 불교정신과 문학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만해교육관, 만해기념관 등 총32개의 전각이 자리한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의 하나이며, 백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기본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안내문, 백담사, 2017년)

<출처>

  1. 백담사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