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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한개마을 한주종택, 여러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유서깊은 저택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에 있는 한주종택이다. 조선후기 영조 때 처음 지어졌으며 여러차레 중건을 거치면서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자와 넓은 정원을 두고 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정자, 대문채, 중문채 등을 두고 있는데 담장과 출입문으로 분리하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승희를 비롯하여 여러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유서깊은 저택이다.

한개마을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전통마을이다. 조선초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들어온 이래 후손들이 모여사는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한주종택, 교리댁 등을 비롯하여 많은 고택들과 제사를 모시기 위한 재실 등이 남아 있다. 나즈막한 영취산이 마을을 감싸주고, 앞으로는 큰 하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으며, 마을앞 들판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한주종택을 출입하는 대문채>

사랑채 앞 마당을 옆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문채는 작은 문간방과 외양간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다.

<안쪽에서 본 대문채>

<사랑채>

사랑채는 앞면 5칸이지만 화려하거나 크지 않은 ‘-‘자형 건물이다.

<마당 안쪽에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채>

살림집이 있는 안채는 담장과 중문채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내부 안마당은 넓은 것으로 보인다.

<한주정사 출입문>

사랑채 동쪽으로는 정자인 ‘한주정사’와 넓은 정원이 있으며, 별도의 대문을 두고 있다.

<한주정사>

정자 건물인 한주정사.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누마루를 두는 등 구한말 이후 유행한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성주 한개마을 전경>

대산동 한주종택,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대산동 한주종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55호 성주 한개마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전통 살림집으로 안채, 사랑채, 사당, 정사 등 모두 10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 소유자의 조모가 상주의 동곽에서 시집왔다하여 ‘동곽댁’으로도 부르고 있다. 가옥은 1767년(영조 43)에 이민검이 창건하고, 1866년(고종 3) 한주 이진상이 중수하였으며, 1910년 한주정사가 증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가옥은 한주정사가 있는 구역과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한개마을의 다른 가옥들에 비해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안채의 튼 ‘ㅁ’자 배치 등은 한개마을 민가 배치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배치상황이 창건 당시의 원형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며 수차에 걸친 증축과 개축의 변천과정이 담겨 있다. 한주종택은 전통가옥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인재의 보고로서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진상은 조선말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이진상의 아들이면서 제자인 대계 이승희와 손자인 삼주 이기원, 배계 이기인 등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전개, 부자가 모두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수훈하기도 하였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