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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외조 – 궐내각사와 수정전(보물)

궐내각사는 국왕을 직접 보필하는 기관으로 궁궐안에 설치된 관청을 말한다. 조선시대 궁궐내 설치된 관청으로는 국왕의 정치를 보좌하는 정책 연구기관인 홍문관, 국왕의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 학술연구기관이자 서적을 출판을 관장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는 예문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오늘날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 등이 있다. 이들 관청들은 대부분 정전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수정전은 세종대의 전례를 본받고자 경복궁을 중건할 때 옛 집현전 자리에 경연(經筵)과 서연(書筵)을 열기 위해 세운 전각이다. 갑오개혁이후 한때 내각이었던 군국기무처가 사용하기도 하였다.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서쪽에는 국왕 직속 관청들인 궐내각사에 해당하는 200여칸에 이르는 많은 행각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수정전만이 남아 있다.

<경복궁 수정전(보물)>

경복궁에도 국왕을 홍문관을 비롯하여 국왕을 직접 보필하는 여러 관청들이 들어섰던 궐내각사가 정전인 근정전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창덕궁 궐내각사인 규장각, 홍문관 등이 인정전 서쪽편 개울을 흐른 경치좋은 곳에 잡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경복궁 궐내각사 인왕산 봉우리와 경회루 연못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원래 200여칸에 이르는 많은 전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수정전만이 남아 있다.

<빈터만 남아 있는 수정전 주변 옛 궐내각사터>

<왼쪽에서 본 모습>

수정전은 궐내각사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국왕 집무공간인 편전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건물은 높은 기단위에 세워졌으며, 앞면 10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궁궐내  관청건물로는 드물게 건물 앞에 넓은 월대를 설치해 놓고 있다. 세종대에 학자를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기관인 집현전이 있던 자리에 세원 건물로 국왕이 참여하는 경연(經筵), 서연(書筵)이 주로 열렸던 장소이다.

<처마와 공포>

<추녀마루 잡상>

<수정전 월대>

<월대 앞에 심어진 작은 소나무>

수정전은 궁궐내 다른 궐내각사 건물과는 달리 건물 앞에 넓은 월대를 설치해 놓고 있다. 월대 정면에는 답도는 없지만 3개의 계단이 있어 국왕이 빈번하게 출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정전 월대 앞에는 세종대 장영실이 만들었던 물시계인 자격루가 있었다고 한다.

<앞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수정전은 원래 세종대 학술연구기관인 집현전이 있었던 자리이다. 세종은 학자를 양성하고 학문연구를 위해 기존의 집현전을 크게 확대 개편하였다. 집현전은 국왕이 유교적 교양을 쌓도록 하는 경연(經筵)과 세자의 교육인 서연(書筵)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세종은 집현적 학사들로 하여금 외교문서 작성도 하고 과거 시험관으로 참여하였으며, 학문을 연구하고 편찬사업을 주도하였다. 세종대 집현전은 조선의 학문적 기초를 닦는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많은 관료들을 배출하였다. 이후 세조대에 단종복위를 꾀하는 등 세조에 반대하는 인사가 많았기때문에 집현전은 폐지하고 홍문관과 예문관이 그 기능을 대신하였다. 이후 정조대에 규장각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경복궁 수정전(보물)
사정전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오면 높직한 기단 위에 커다란 건물이 버티고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세종 때 지은 집현전(集賢殿)이 있었으나 세조가 집권한 이듬해(1456)에 폐지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수정전을 경복궁 중건(1867) 때 건립되었으며 고종 초기에는 왕이 기거하는 곳으로, 이후에는 신료들과 정무를 의논하는 편전으로 사용되다가 갑오개혁 시절에는 군국기무처 및 내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건물 뒤로 돌아가면 굴뚝 두 개가 처마끝에 나란히 올라있다. 이를 통해 온돌을 이용한 난방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수정전과 궐내각사에서 정전으로 출입하는 출입문>

국왕은 편전에서 이 문을 통해 수정전을 출입했을 것으로 보인다.

<궐내각사와 편전을 연결하는 작은 출입문>

<휴식공간>

궐내각사 행각들이 있던 자리에는 경복궁내 유일한 휴식공간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경회루>

궐내각사 뒷편에는 경복궁내 공식적인 만찬이 열렸던 경회루가 있다.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얼마나 우대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수정전(修政殿)과 궐내각사(闕內各司)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관청을 궁궐 안에 설치해 궐내각사라 불렀다. 비서실인 승정원, 서적편찬을 맡았던 홍문관, 의료기관인 내의원 등 크고 작은 관청들이 근정전 서쪽에 있었다. 세종 때 한글 창제의 무대가 된 집현전은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다. 1867년 중건된 이곳의 왕의 출입이 빈번하여 관청으로는 드물게 정면에 월대를 두었다. 수정전은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내각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