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궐내각사에는 국왕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정책을 보좌하던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 등과 함께 국왕의 건강을 관리하던 내의원(內醫院)이 자리하고 있다. 궁궐내 병원 역할을 했던 내의원은 ‘약방(藥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행각들이 밀집해 있다. 약방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비교적 큰 건물이다. 건물들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좁은 공간을 활용해서 많은 방들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작은 행각들이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왕의 말과 글을 대필하던 예문관과 함께 국왕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모실 수 있도록 공간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궐내각사 입구>
창덕궁 외조 중문에 해당하는 선정문 왼쪽 궐내각사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협문을 들어서면 내의원과 예문관이 있고, 그 안쪽에 역대국왕들의 초상화를 모셨던 선원전과 부속 건물들이 모여 있다.
<내의원 동쪽마당과 행각>
안쪽으로 선원전과 재실들이 연결된다. 행각에서 내의원에 속했던 의원들과 실무진들이 대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의원>
조선시대 최고의 의료진들이 근무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내의원이다. ‘약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큰 건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행각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약방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큰 건물로 앞쪽과 옆쪽으로 행각이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구조나 형태에서 대청마루나 툇마루가 없고 큰 출입문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중요한 약재 등을 보관하고 있던 건물로 보인다.
<약방과 연결된 서쪽 건물>
약방 건물 서쪽편으로 대청마루와 방이 있는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이 건물의 구조로 볼 때 내의원 의원들과 관원들이 근무했던 사무실 용도로 보인다.
<약방 앞 작은 건물>
약방 건물 앞쪽에는 앞면 1칸 옆면 2칸짜리 작은 건물이 있고, 복도로 약방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중요한 약재를 보관하던 건물로 보인다.
<바깥쪽 건물>
이 건물은 안쪽에서는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바깥쪽에서는 서로 연결된 건물이다.
<약방 마당 서쪽편에 있는 앞면 6칸짜리의 행각 건물>
가운데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에 방을 두고 있다. 의료진이나 관원들이 근무하는 건물이면서 궁궐내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던 공간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내의원은 왕의 약을 조제하는 일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전의원.혜민서와 함께 삼의원이라 불렀다. 내의원에는 정1품 도제조와 정2품제조, 정3품 부제조가 있기는 하지만 영의정과 도승지가 겸임하였다고 한다. 내의원에는 관원들과 서리 등 행정실무진과 어의, 침의 등 의료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당히 많은 수의 인원들이 배속되어 있었다. 궐내각사 내의원은 많은 인원들이 근무하고, 환자가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많은 행각들을 두고 있는데, 주로 크고 작은 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 성정각이 한때는 내의원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동궁 성정각 마당에 있는 건물>
창덕궁 동궁영역 성정각 마당에는 한때 내의원으로 사용된 건물을 볼 수 있다. 원래 성정각은 동궁에 속한 건물인데, 일제강점기 순종이 창덕궁에 머물면서 이곳에 내의원을 두었다고 한다. ‘조화어약(調和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이라는 편액도 보이는데 정조의 어필이라고 한다. 이곳으로 내의원을 옮길 때 같이 옮겨진 것이라 한다.
<내의원에 걸었던 현판>
<내의원에 걸었던 현판>
‘조화어약’은 왕의 약을 조제하는 것을 뜻한다. ‘보호성궁’은 왕의 몸을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조선시대 의료기관
전통사회에서 최고 통치자인 왕의 건강은 정치적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 왕의 건강이 악화되어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제때 내릴 수 없게 되면 국정 운영이 순조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에는 궁궐 안에 왕실의 의료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인 내의원을 설치하고 최고의 의료진으로 하여금 국왕의 건강을 보살피도록 하였다. 왕에 대한 진료는 왕의 거처에서 이루어졌으며 내의원에서는 의원을 파견하고 필요한 약재를 공급하였다. 조선말기 내의원에게는 고위관료, 의관, 의녀, 시종과 각종 노비를 합쳐 140명 이상의 의원이 근무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경혈을 나타낸 청동 인체상(조선)>
청동으로 만든 인체상에 전신에 흐르는 경혈을 선으로 새기고, 선 위에 총 354개의 경혈을 표시하였다. 궁중의 내의원에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편주의학입문내집(조선)>
내의원에서 중국 명나라 이천이 지은 의학입문서에 주석을 달아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의학서이다.
<동의보감(조선, 허준지음)>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의서이다. 의학 서적으로는 최초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은 16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해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와 치료 기술을 자세하게 다뤄 의료의 대중화에 이바지하였다.
<증급유방, 15세기, 보물>
의가비전의 질병 처방인 ‘의가비전수신비용가감십상방’과 ‘경험급구방’을 한데 모아 조선전기에 간행한 의서이다. 한국 의학사와 출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은 희소가치가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약장(조선)>
<약을 가는 기구(약연, 조선)>
조선시대 의학을 발달
조선의 의학은 고려의 의학과 제도를 계승하고 보완해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향약을 연구하고, 자기 관찰과 실험에 의해 간행된 의석가 모두 90여종이 넘는다. 세종대 출간된 『향약집성방』과『의방유치』는 우리 풍토와 체질에 맞는 약재와 치료법을 정리한 것이고, 선조의 명으로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은 역대 고금의 한의방의 정수를 채택하여 집대성한 것으로 일본과 청에 번각되어 우리의 수준 높은 의학을 대외적으로 알리게 된 의서이다. 또 고종대에 이제마는 사람의 체질을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식이요법과 감정을 다스려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사상의학을 발전시켰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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