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주제는 ‘인간의 변화를 탐색하는 경험’이다. 조선시대 유학자의 초상화, 풍속화, 근대 인물화 추상미술 등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구한말 고종의 어진을 그렸던 화가 채용신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김득신, 이명기 등 조선후기 화가들이 그렸던 인물화와 박수근, 이인성 등의 인물화, 이응노, 김환기 등의 추상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비롯한 조각작품 등을 전시했다.
이명기(1756~1813년)는 조선후기에 활동했던 화가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직수 초상>, <허목 초상> 등이 있다.
<권상하 초상, 이명기(1756~1813 이전), 조선 18세기 말 ~ 19세기 초,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일흔아홉의 권상하가 복건을 쓰고 심의를 입었다. 이 그림은 화원 김진여가 1719년에 그린 초상화를 본으로 하여 이명기가 18세기 후반에 다시 그린 것이다. 권상하는 송시열의 수제자였다. 권상하의 후학들도 그의 초상화를 다시 제작하여 추모와 계승의 뜻을 이어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채용신(1850~1941)은 구한말에 활동한 문신이자 화가로 초상화를 잘 그렸다. 고종황제 어진을 비롯하여 여러 왕들의 어진을 그렸으며, <전우 초상>, <황현 초상>, <최익현 초상> 등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우국지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전우 초생, 그림 채용신, 제발 김종호, 1920년,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여든 살의 전우(1841~1922)를 황색 평상복과 장보관 차림으로 그린 초상이다. 완고한 선비의 느낌이 잘 전달된다. 전우는 근대의 격변기에 마지막까지 성리학을 수호하고 서구 문물을 배격한 도학자였다. 채용신은 최익현과 전우를 비롯한 우국지사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려 그 정신을 기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경현당선온도, 경현당갱재첩 제1면, 작가모름>
경희궁 경현당은 왕세자가 공식 의례를 행하고 공부하던 전각이다. 1741년 6월 21일 영조는 <춘추집전> 강독을 마쳤다. 다음날 경현당에서 신하들에게 술을 하사하는 선온(宣醞)을 열고 이를 그림으로 남겼다. 전각 중앙 일월오봉도 병풍 앞이 국왕(영조)의 자리이고, 그 오른쪽이 왕세자(사도세자)의 자리이다. 앞쪽에 행사에 참여한 관원 13명이 앉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경현당 갱재첩, 영조, 권적, 김상성 등 14인, 조선 1741년, 그림:종이에 색, 글씨: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경희궁 경현당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신하들이 모여 사도세자의 교육 상황을 점검하는 모임을 갖고 이를 기록한 글과 영조와 신하들의 시를 모은 첩이다. 일곱살 왕세자를 엄격하게 교육하는 아버지로서의모습, 학문으로 군신 간의 의리를 강조하는 임금으로의 면모를 살벼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김득신(1754~1822년)은 조선후기에 활동한 도화서 출신의 화가이다. 자연과 풍속화를 잘 그렸는데 심사정, 정선과 함께 영조 때 삼재로 불렸다.
<나무 아래 일하는 가족, 김득신(1745~1822), 조선 18세기 말 ~ 19세기 초,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 외에도 일반인의 고단한 삶을 그린 조선시대 그림이 전해진다. 그림 속 부모는 생업에 여념이 없는데 아이는 배가 고파 입을 벌리며 엄마에게 기어간다. 짚신을 삼는 남성의 근육은 짤고 긴장된 선으로 묘사하고, 물레를 돌리는 여성의 옷주름은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 동작에 어울리게 표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이 그림은 구한말 서양인의 취향에 맞추어 그려진 풍속화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준근은 평민 출신 풍속화가로 <기산풍속도>, <천로역정> 등의 작품을 남겼다. 개항장에서 작을 그려 팔았기 때문 전세계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남아 있다.
<기녀와 도박을 하다, 기산풍속도첩 제20면, 김준근, 조선 19세기말 ~20세기 초,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놀이에 몰두한 인간 군상를 생생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남자들이 기생과 어울려 골패 노름을 하고 있다. 띠를 머리에 동여매고 색안경을 낀 모습이 흥미롭다. 이 그림은 김준근이 개항장에서 외국인에게 팔기 위해 그린 그림 중 하나로 19세기 말 조선의 풍속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제1폭 학문을 시작하다.>
<제2폭 혼례를 올리다>
<제3폭 과거 급제해 집으로 돌아오다.>
<제4폭 수군을 훈련시키다.>
<제5폭 태조 고황제의 어진을 그리다.>
<제6폭 새 임지로 부임하다.>
<제7폭 세 임지에 도착하다.>
<제8폭 아전들이 인사를 올리다.>
<제9폭 황제의 은혜를 받들다.>
<제10폭 화갑연을 열다.>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작가 모름, 20세기 초,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이상적인 사대부의 삶을 그린 평생도 병풍 전통을 이었지만 이 작품은 채용신의 개인사를 소개한 점에서 이전과 달라진 면모를 보여준다. 제5폭은 경운궁 흥덕전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그리는 장면이다. 서양식 제복과 전통이 혼재된 궁중 복식, 정동 언덕 위에 늘어선 외국 공사관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한일(閑日), 박수근,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박수근 미술관>
1950년대 서울에 살던 박수근은 날마다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을 즐겨 그렸다. 당시 서울에는 취미생활을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사람들은 길가에서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보냈다. 국민 화가 박수근의 우직한 손길을 거쳐 특유의 색감, 투박한 질감으로 탄생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이인성, 1934년, 종이에 수채, 대구미술관>
20세기 전반 인간을 향한 시선과 표현이 다양해지면서 근대 지식과 문물을 체현한 신여성이 그림에 등장한다. 화가 이인성이 연인지자 훗날 아내가 되는 김옥순을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 표현했다. 그녀는 대구 유지의 딸로 당시 일본 도쿄에서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던 신여성이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나부입상, 서진달, 1934년, 캔버스에 유채, 대구미술관>
한국에 서양화가 들어오면서 누드화도 전해졌다. 한국 화가들은 1910년대부터 일본 유학 중에 누드화를 그렸다. 이 작품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1910~1920년대 한국 화가가 여체의 뒷모습을 포착한 누드화를 그린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과감하게 정면을 포착했고 여체를 미화하지 않고 풍만한 모습 그대로 표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인물(남자 누드), 이인성, 1940년대, 나무 패널에 유채, 대구미술관>
불안감은 인간에게 종종 찾아오는 감정이다. 이 나체의 남성은 얼굴과 얼굴을 감싼 손이 어둡게 처리되어 있어 괴롭고 갈등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양손에 붓을 들고 있는 이 남성은 화가 자신이 모델인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여인과 고양이, 박래현, 1959년, 종이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불안한 현실과 이를 포용하듯 묵묵히 받아들이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여인의 다리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고양이, 여인 뒤쪽의 검은 그림자, 날카로운 가시와 나뭇가지, 그리고 거꾸로 매달린 새는 여인 주위에 존재하는 불안을 상징한다. 여러 불안 요소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여인은 묵상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손, 최종태, 1980년대, 철, 국립현대박물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불안함을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다. 인간의 형태를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조각가 최종태의 <손>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쫙 펴고 있는 형상이다. 곧게 뻗은 손은 우리에게 함께 하자고 청하는 듯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군상, 이응노, 1985년, 캔버서, 종이에 수묵, 국립현대미술관>
수많은 사람이 함께 모인 이 작품은 이응노의 ‘군상’ 시리즈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지만, 사람의 모양도 움직임도 다르다. 인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이다. 이처럼 독립된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모여 생각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하늘과 땅, 방혜자, 2010년, 패널, 종이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방혜자의 작품은 흙, 석채와 같은 천연 안료를 종이에 칠했다가 지우거나 문지르고, 재료를 구겼다가 펴는 기법을 써서 파장으로 퍼져나가고 은은하게 스며드는 빛을 표현했다. 이 빛은 우주의 존재를 담고 있는 매개체이자 깊은 명상과 사유로 얻어지는 내면의 빛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산울림, 김환기, 1973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은 보이는 세계를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대형 화면을 점으로 가득 채워,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광대한 별자리처럼 보인다. 김환기는 광목을 바닥에 놓고 아교칠을 한 곳에 푸른 점을 무수히 채워 넣어 한지에 먹이 번지는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파란 점들이 이루는 파동이 합쳐져 광대한 우주의 에너지를 품은 듯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천국의 계단, 박종배, 1980년대, 청동, 국립현대미술관>
박종배의 조각은 원과 사각, 구와 기둥 등 서로 다른 조형 요소가 능숙하게 결합해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작품 역시 곡선과 직선의 이질적인 모양이 반복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상승하는 느낌을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했는데, 이는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며 영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를 대변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가측성, 존배>
<가족, 전뢰진, 1978년, 대리석, 국립현대미술관>
아이 키우는 일은 힘들지만, 아이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부모는 아이와 살과 살을 맞대며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게 된다. 두 아이와 엄마의 정겹고 평화로운 한때에서 원초적 생명에 대한 찬미가 느껴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비상, 김정숙, 1985년, 대리석, 국립현대미술관>
‘비상’은 김정숙이 추구한 영원을 향한 초월의 의지를 반영한 시리즈이다. 작가는 나선이나 부채꼴 같은 행태를 실험하면서 상승과 하강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특히 엄격한 균형감과 표면 질감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브람스, 백남준, 1993년, 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모니터 3대, DVD플레이어, 바이올린 1대, 첼로 2대, 네온사인, 키보드, 캔버스 철에 아크릴릭, 오브제, 천, 국립현대미술관>
현대 미술의 개념을 확장한 백남준은 1963년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TV모니터를 사용하여 실험을 하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이 작품처럼 예술가나 역사적 인물을 비디오 모니터, DVD플레이어 등으로 로봇처럼 표현했다. 한자와 악보 등을 덧붙여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확장하고 뻗어나가는 인류의 문화를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인간의 변화를 탐색하는 경험
자연에 대응하며 많은 물건을 만들고 문명을 이룩한 인간 사회가 추구하는 바는 다양합니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이상적인 인간상은 계속 변했습니다. 사회적 신념이 개인의 생각보다 중시되었으나 점차 개인의 주체적인 생각과 감성이 인류 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조선 유학자의 초상화와 풍속화, 근대 누드화, 현대 추상미술과 비디오 아트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생각의 경계를 넘어온 인간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 ‘이명기(화가)’, 위키백과, 2023년
- ‘채용신’, 위키백과, 2023년
- ‘김득신’,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