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충렬서원(忠烈書院)이다. 이 서원은 고려말 유학자이자 충신이었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년)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서원이다. 선조대인 1576년 정몽주와 조광조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광해군대에 충렬(忠烈)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다. 구한말 서원철폐령때 1인1서원의 원칙에 따라 개성 정몽주가 살았던 집터에 세워진 숭양서원(崇陽書院)만 남고 이 서원은 훼철되었다가 1924년 복원되었다.
<용인 충렬서원>
<홍살문>
건물은 강당과 사당, 그리고 내삼문/외삼문으로 구성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재실이나 장경각·교직사 등 부속건물이 없이 사당과 강당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교육기능이 많지 않은 제사 위주의 기능을 갖고 있는 경기지역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충렬서원이 있는 곳은 경기도 광주에서 수원으로 가는 국도변으로 부근에 정몽주 묘역이 있다.
<솟을삼문을 하고 있는 외삼문>
<강당>
강당은 앞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교육기능이 강했던 지방의 서원과는 달리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용도로 사용된 작은 규모의 강당이다.
<강당 앞 마당>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 머물던 기숙사인 동.서재가 없다.
<사당 내삼문>
<사당>
사당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당에는 정몽주와 함께 손자 정보, 병자호란 때 순직한 이사직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원래는 조광조의 위패도 같이 모셨으나 심곡서원이 세워지면서 위패를 옮겼다고 한다.
<뒤에서 본 모습>
<서원 담장과 마을>
<인근에 위치한 정몽주 묘역>
용인 충렬서원(忠烈書院),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고려 후기 충신이자 동방성리학의 시조인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서원이다. 조선 선조 9년(1576)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져 선조 38년(1605)에 다시 지었다. 이때 정보와 이시직을 같이 모셨다. 광해군 원년(1608)에 임금이 이름을 짓고 현판을 하사하여(사액), 나라의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선현배향과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담당하였으나 고종 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으나, 1924년에 복원하였다. 마을 뒤쪽의 야산 기슭에 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강당을 앞쪽에 배치하고 사당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입구의 홍살문과 내삼문·외삼문·사당이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강당이 축에서 벗어나 사당과 나란히 보이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재실이나 장경각·교직사 등 부속건물이 없이 사당과 강당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8세기 이후에 서원이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 중심의 시설로 바뀌어 갔음을 보여 준다. 강당도 교육공간보다는 제향 때 모임 장소로 쓰였다. 전하는 유물로 『유한집』과 『단심가』등을 서원에서 보존하고 있다. 강당과 사당만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서원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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