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통일신라
-
경주 흥륜사지 출토 석조
국립경주박물관 마다에 있는 흥륜사지 출토 석조(石槽)이다. 높이 1.77 m, 너비 3.92 m의 상당히 큰 규모의 석조이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규모나 조형미가 상당히 뛰어난 유물이다. 바깥에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데 흥륜사 절터에 있던 것을 경주읍성 안 금학헌으로 옮겼다는 내용이다. 석조유물이 많았던 경주에서도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석조(石槽)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큰 돌을 넓게 파고 물을 받아…
-
경주 고선사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사찰
경북 경주시 암곡동에 있었던 고선사(高仙寺) 절터 출토유물들이다. 고선사의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원효가 머물렀던 곳으로 신라 29대 무열왕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원효대사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1913년 절터에서 원효의 행적을 기록한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조각이 발견되었다. 절터에는 신라를 대표하는 석탑 중 하나인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거북받침돌 석등대석 등이 있었다. 1975년 덕동댐 공사로 절터가 수몰되면서 유물들은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
경주 숭복사 쌍거북비석받침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경주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이다. 이 비석받침은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숭복사 절터에 남아 있던 것이다. 숭복사는 원성왕릉 원찰 역할을 했던 사찰로 <삼국유사>에 최치원이 비문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마리의 거북이 비석을 받치고 있는 형태는 흔치가 않은데 왕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경주 창림사지와 무장사지에 비슷한 형태의 거북받침돌이 있다고 한다. 높이 0.77 m, 너비 1.8…
-
경주 백률사 이차돈 순교비, 2011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이차돈 순교비(異次頓殉敎碑)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불교 공인에 큰 역할을 한 이차돈을 기리는 비석으로 통일신라 헌덕왕 때(817년) 세워졌다. 비석은 높이 106 cm 이며, 화강암으로 만든 육면 기둥형태이다. 비석위에 지붕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가운데에는 이차돈이 순교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 나머지 면에는 정간(井間)을 치고 글자를 새겼다. 글자는 마모되어 절반 정도만 판독할…
-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2011년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이다. 이 불상은 경주 백률사에 모셔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경주박물으로 옮겨졌다. 높이 1.7 m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금동불상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현재는 약단지를 쥔 손이 없지만, 옛 사진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남아 있다. 원래는 금도금을 하였던 것을 후대에 금도금이 없어지고 채색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크지 않으며…
-
경주 굴불사지, 백률사 아래 있는 절터
경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기슭 아래에 있는 절터인 굴불사지(掘佛寺址)이다.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백률사(栢栗寺)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세기에 경덕왕이 백률사를 행차했을 때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 돌이 나와 4면에 불상을 새기고 불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발굴.조사 결과 ‘동사(東寺)’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으며, 고려시대 쇠북에는 굴석사 (掘石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현재 절터에는 통일신라…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대표적인 통일신라 사방불
경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굴불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사면불상(보물)이다. 이 불상은 큰 바위 에 불상을 새겼는데 서쪽에는 아미타여래, 동쪽에는 약사여래, 북쪽에는 미륵보살, 남쪽에는 석가모니를 새긴 사방불(四方佛)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세기에 경덕왕이 백률사를 행차했을 때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 돌이 나와 4면에 불상을 새기고 불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입체감과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뺴어난…
-
경주 헌덕왕릉(사적), 신라 41대 헌덕왕
경북 경주시 동천동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 김언승)의 무덤이다. 헌덕왕은 원성왕의 손자이자 소성왕의 동생으로 난을 일으켜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재위기간 동안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안정화하고,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사를 장려하였다. 웅주도독 김헌창의 반란을 진압하고, 대동강 지역에 장성을 쌓고 국방을 강화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반란을 통해 조카를 죽이고 즉위하였으며 귀족세력의 반란 진압했던 것으로 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