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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사적

  • 서울 정동교회(사적), 최초의 개신교회 건축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정동교회이다. 1885년(고종22)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H.G.Appenzeller)가 설립한 감리교 교회다. 아펜젤러는 1885년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서양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언더우드 등과 함께 성경 번역작업에 참여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교회 건물(사적)은 구한말인 1897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 건물이다. 원래 십자형으로 지어졌는데,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부분을 넓혀서 현재는 네모난 모양을 하고…

  • 서울 구러시아공사관(사적), 정동길 언덕에 남아 있는 아관파천의 현장

    서울 중구 정동길 덕수궁 뒷편 높은 언덕 있는 구러시아공사관이다.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위협을 느낀 고종이 잠시 피신을 했던 곳으로 역사적인 사건인 아관파천의 현장으로 구한말의 힘겨운 역사를 말해주는 건물이다. 이 기간동안 친일파 내각이 무너지고 친러시아 내각이 조직되었으며, 서재필이 주도하는 독립협회가 결성되었다. 냉전체제하에서는 비어 있었던 건물터로서 90년대 초 한.러 수교시 러시아에서 돌려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다.(?)…

  • 단양 온달산성(사적), 고구려 온달장군 전설이 남아 있는 산성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에 있는 삼국시대에 쌓은 산성인 온달산성(사적)이다. 남한강 남쪽 성산(城山) 정상부 부근부터 북쪽 방향 경사진 지형에 반덜모양으로 성벽을 두르고 있는 테뫼식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683 m이며, 남쪽 봉우리와 북쪽성벽 안쪽에 약간의 평탄한 땅이 있다. 동.서.남쪽에 성문과 수구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서북쪽은 가파른 절벽이며 동쪽과 남쪽에는 돌로 석축을 쌓았다. 작은 크기의 돌을 촘촘히 쌓아 올린…

  • 단양 적성산성(사적),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가 쌓은 산성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성재산에 정상부에 있는 적성산성(赤城山城,사적 )이다. 이곳은 조령(문경새재)과 더불어 영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중요한 교통로인 죽령길을 지키는 산성이다. 남한강 북쪽에서 죽령을 향하는 적을 제압하는 목적으로 쌓은 산성으로 신라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산성내에 가장 오래된 비석 중 하나인 단양 신라적성비(국보)가 있고, 산성에 올라서면 남한강 전경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에서 몇 안되는 중요한…

  • 단양 수양개 선사유적(사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남한강변에 있는 수양개유적(사적)이다. 남한강변 충적대지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선사시대 주거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에 원삼국시대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1980년대 충주댐 건설로 단양읍과 주변 남한강변 마을이 수몰되면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곳이다. 1983년 이후 충북대학박물관에 의해서 8차례에 걸쳐 발굴되었으며, 발굴된 주요 유물들은 유적지 뒷편 언덕에…

  • [수원화성] 서장대(西將臺, 華城將臺), 팔달산 정상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팔달산 정상부 능선을 북쪽 끝자락에는 서장대(西將臺)와 서노대(西弩臺)가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는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화성내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곳이다. 수원화성에는 군사들을 지휘하는 곳으로 서장대와 함께 장안문 동쪽에 연무대(鍊武臺)라고도 불리는 동장대(東將臺)가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는 앞면3칸, 옆면3칸 규모의 2층 누각이다. 서장대 뒷편 사방으로 쇠뇌를 공격할 수 있는 방어시설인 서노대가 설치되어 있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 적힌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며, 그는…

  • [수원화성] 팔달문~서남각루, 팔달산 남쪽 능선으로 이어진 성벽

    수원화성(사적) 팔달문에서 정상부까지 성벽들로 이어져 있다.  기존 산성 축성방법에 따라 지은 석축성을 하고 있으며 성벽 위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정조때 쌓았지만 숙종대에 쌓은 한양도성에 비해 화강석의 크기가 작고 잘 다듬지는 않았다. 경사진 지형으로  방어에 용이하기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방어 시설을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정상부까지 치성(雉城)과 포루(砲樓)가 1곳씩 설치되어 있다. 치성은 성벽을 돌출시켜 방어에 용이하도로…

  • 부여 관북리유적(사적), 백제 사비성 왕궁터

    부여 부소산성 아래 옛 부여현 관아와 옛 부여박물관이 있었던 곳에 위치한 관북리유적(사적)이다. 이곳은 백제 왕궁터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과정을 통해 대형 전각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연못, 우물터, 기와로 만든 배수관 등이 확인되었다. 연못터에서는 백제시대의 기와 및 토기편, 목간, 짚신, 금동제귀걸이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백제의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진흙을 다져 포장한 도로와…

  • 부여 정림사지(定林寺址, 사적), 백제 사비도성(泗沘都城)의 중심 사찰

    백제를 대표하는 오층석탑이 남아 있는 옛절터인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定林寺址, 사적)이다. 정림사는 백제 사비도성(泗沘都城) 중심부에 위치하는 중심사찰로 경주 황룡사와 비슷한 성격의 사찰이다. 이 사찰이 건립된 시기는 백제가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이다. 정림사는 새수도를 건설할 때 도성, 궁궐 등과 함께 도시의 기능을 갖추기 위해 세운 공공시설 중 하나이다. 정림사는 백제 궁궐(부여읍 구아리와 관북리 일대)에서 정남방향으로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