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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조선백자] 문인문화의 유행
1. 조선왕실과 백자, 2.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 3. 지방의 백자, 4. 문인문화의 유행, 5. 백자의 제작, 6.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 7. 문양이 된 문자, 8.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백자는 유교사회를 추구했던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의 취향에 잘 맞아 떨어졌다. 조선전기에는 사대부 취향의 백자와 서민취향의 분청사기가 같이 만들어졌으나 사옹원 산하 관요에서 수준높은 백자를 만들게 되면서 민간에서도 백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조선후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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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조선백자] 지방백자
1. 조선왕실과 백자, 2.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 3. 지방의 백자, 4. 문인문화의 유행, 5. 백자의 제작, 6.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 7. 문양이 된 문자, 8.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조선중기 사옹원 산하 관요인 분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전국 각지에는 많은 가마들이 있었으며, 공물의 형태를 도자기를 만들어 왕실에 납품했다.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걸작도자기인 분청사기가 주로 지방의 가마에서 만들어졌다. 관요가 설치되면서 왕실과 관청의 요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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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조선백자]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
1. 조선왕실과 백자, 2.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 3. 지방의 백자, 4. 문인문화의 유행, 5. 백자의 제작, 6.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 7. 문양이 된 문자, 8.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조선시대 관요에서 만들어진 백자는 주로 왕실에 납품하였다. 백자는 그릇이라는 원래의 용도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왕실에서 사용했던 다양한 백자들이 남아 있는데 국가 의례에 사용되었던 제기를 비롯하여, 왕실가족의 태를 묻었던 태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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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조선백자] 조선왕실과 백자
1. 조선왕실과 백자, 2.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 3. 지방의 백자, 4. 문인문화의 유행, 5. 백자의 제작, 6.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 7. 문양이 된 문자, 8.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백자는 분청사기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이다. 순수와 절제가 돋보이는 백자는 유교사회를 추구했던 조선시대 지배층인 사대부의 취향에 잘 맞아 떨어졌다. 조선전기에는 사대부 취향의 백자와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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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발굴과 복원
경희궁은 1970년대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이후 그 터만 남았던 것을 발굴.조사를 거쳐 전각 일부를 복원하였다. 조선후기 많은 전각들이 있던 넓은 경희궁 권역에는 서울고 이전 이후 원래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도심에 있던 위치적인 장점때문에 많은 공공기관들이 들어설려고 했으며, 그 중 서울시교육청이 경희궁 서쪽 언덕에 이전해 왔으며,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하여 일부 공공기관이 자리잡게 되었다. 1980년대 발굴.조사 이후 경희궁은 정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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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구한말 이후 터만 남은 경희궁지
조선후기 국왕의 임시거처이자 왕실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서궐(西闕)로 불렸던 경희궁은 구한말 고종대 경복궁 중건과 함께 그 역할이 크게 축소되면서 궁궐로서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 밖에 없었다. 경복궁 중건과정에서 많은 전각들을 헐어 건축자재로 사용되었으며, 왕실가족이 생활하는 이궁(離宮)의 역할은 법궁이었던 동궐이 맡게 되면서 경희궁은 실질적인 용도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후 숭정전을 비롯하여 일부 전각만 남아 있는 넓은 공터만 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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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경희궁의 공간 구성
경희궁은 임진왜란 창덕궁이 공식적인 궁궐인 법궁(法宮)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국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이궁(離宮)으로 자리잡으면서 서궐(西闕)로 불렸다. 법궁으로 세워진 경복궁과는 달리 경희궁은 인왕산 자락 아래 경사진 지형에 맞추어 전각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였다. 정전인 숭전전이 인왕산 자락 아래 서쪽편에 치우쳐 있고, 정문인 흥화문은 종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워져 있었다. 궐내각사와 동궁전 흥화문 주변에 있었으며, 그 안쪽으로 국왕과 가족들이 거처하는 편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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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경희궁의 역사적 의의
경희궁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여러 궁궐들을 중건하면서 세워진 궁궐로 1623년(광해군15)에 완공하였다. 조선후기에 소실된 경복궁을 복원하지 않고 창덕궁을 법궁(法宮)으로 삼으면서 이궁(離宮)으로 동궐의 부족한 공간을 해소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숙종과 경종이 경희궁에서 태어났으며, 숙종.영조.순조 등이 승하하였고, 경종.정조.헌종이 즉위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고종대 경복궁을 중거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들을 헐어내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을 교육하기 위한 경성중학교(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섰으며,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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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신안실] 용천요(龍泉窯, Longquan kiln), 아름다운 빛깔 명품 청자의 대명사
1. 신안선 발굴, 2. 신안선에 실린 도자기들, 3. 화물주인과 선원들의 생활, 4. 차,꽃,향과 관련된 기물, 5. 청자의 고장, 용천요, 6. 청백자의 고장, 경덕진요, 7. 자주요, 길주요 등, 8. 복건성 가마들 용천요(龍泉窯 , Longquannyao)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용천현(龍泉縣) 일대에 있었던 도자기 생산지를 말한다. 영어로 청자색을 뜻하는 ‘셀라돈(Celadon)’이 바로 이 용천요의 청자에서 유래되었을 만큼, 용천요는 아름다운 청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중국 북송때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