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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비우당, 실학자 이수광이 살았던 집터
조선중기 실학자 지봉 이수광이 살았던 집터인 비우당(庇雨堂)이다. 집터는 한양도성을 이루고 있는 동.서.남.북 봉우리 중 가장 낮은 서쪽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동쪽 상산 줄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수광은 조선중기 실학자의 선구자로 세차례에 걸쳐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 유구, 베트남 등 중국 주변국은 물론 영국, 포르투갈 등 서양세계를 비롯한 다양한 내용을 담은 백과사전 성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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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보물), 왕실 종친을 관리하던 관청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보물)’이다. 건물은 정청인 경근당과 별채인 옥첩당, 그리고 두 건물을 연결해 주는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정청 건물인 경근당은 앞면 7칸으로 관청건물 중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규모로 의정부나 삼군부 청사와 비슷한 규모이다. 경근당에는 국왕의 어진 등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 사무공간은 별채인 옥첩당에서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낙산 서울성곽 동쪽과 육사교정으로 옮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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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용흥궁,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잠저
강화읍 관청리에 소재한 조선 25대 철종이 강화도 유배시절에 살았던 잠저(潛邸)인 강화 용흥궁이다. 용흥궁은 원래 초가였던 것을 철종이 즉위한지 4년이 되던해에 강화유수 정기세가 현재와 같은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관아가 있던 지역이라 좁은 골목안에 대문을 세우고 일반 민가처럼 사랑채, 안채, 문간채를 지었는데, 이를 별전, 내전, 외전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잠저는 인조, 철종, 고종처럼 정상적으로 왕세자를 거쳐서 왕위에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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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노락당과 이로당,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사적257호)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살았던 곳으로 대표적인 잠저(潛邸)이다.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이곳에서 살기는 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고종이 즉위한 이후에 새로이 지은 건물이다. 운현궁은 사랑채인 노안당, 명성왕후가 왕비수업을 받았던 노락당, 안채인 이로당, 별당인 아재당, 정자인 영화루, 은신군.남연군의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언덕에 있던 별당.사당.정자 등은 일제가 허물고 양관이라는 현대식 건물을 지었다. 운현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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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노안당, 흥선대원군이 거처했던 구한말 정치의 중심지
구한말 역사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궁이다. 이곳은 고종이 태어나 12세까지 살았던 곳으로 고종이 즉위하면서 국왕이 살았던 사가(私家)인 잠저가 되면서 운현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운현(雲縣)은 창덕궁 정문 서쪽편 운현궁이 위치한 관상감 앞 고개를 가르키는 이름이다. 고종이 즉위하고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집정을 하면서 그 규모가 크게 확장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어다. 고종 즉위 이듬해인 1864년에 노락당(老樂堂)과 노안당(老安堂)이 지어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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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함화당과 집경당, 후궁들이 거처하는 영역
경복궁 교태전과 향원정 사이에는 후궁들이 거처하던 영역으로 동궐에서 창경궁 명정전 북쪽 지역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공간이다. 창경궁에는 영춘헌과 집복헌이 남아 있다면, 경복궁에는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을 대표적인 전각으로 최근에 복원하였다. 함하당과 집경당은 같은 울타리안에 붙어 있는 건물로 후궁 영역에 있지만 그 용도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건물을 만들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동궐 창경궁에 많은 전각들이 있어서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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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 후궁들의 거처
대비들의 거처였던 양화당 아래쪽에는 후궁들의 거처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춘헌과 집복헌이 있다. 사도세자와 순조가 이곳에서 태어났고, 정조가 자주 머물렀고, 승하한 장소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어서 지금까지 건물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원래는 2개의 집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순조 때 큰 화재로 불탄 것을 현재의 모습을 중건하였다. 이 건물은 기본적으로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가옥으로, 양반 사대부들이 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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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연경당(보물),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공간
창덕궁 후원 2번째 공간인 애련지 일원에 위치한 연경당(보물)은 낙선재와 함께 궁궐 건물 형식을 취하지 않고 사대부 저택처럼 지어진 건물이다. 궁궐생활에 탈피하여 조용한 숲속에서 사대부 저택처럼 집을 짓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구한말 국왕들의 취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국왕에 즉위하기 전 어린 시절을 사가(私家)에서 보냈던 고종은 궁궐보다는 사대부 저택을 선호하여 이곳 연경당을 애호했으며, 경복궁에도 후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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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보물) 일원, 조선왕실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거처했던 궁궐 전각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한 낙선재(보물) 일원은 1846년(헌종 12)는 창건된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와 취운정.한정당.상량정, 승화루, 삼삼와, 칠분서 등을 볼 수 있는데, 승화루 등 낙선재 뒷편에 있는 건물들은 실제로는 세자가 거처하던 동궁에 속한 건물들이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을 위해 지은 건물로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 건청궁처럼 국왕이나 왕비들이 궁궐에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사대부 저택처럼 꾸며놓은 처소이다. 낙선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