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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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사지(사적),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능산리사지(사적)이다. 백제의 대표적인 고분군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수도 사비성을 둘러싸고 있던 부여나성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절터가 확인되었다. 절터는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축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이니 백제의 1탑1금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절터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함(국보)를 비롯하여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류,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재인 수막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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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군수리사지(사적),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군수리사지(사적)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본인에 의해 백제 절터 중 최초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축으로 일직선에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의 1탑 1금당식 가람배치가 확인되었다. 금당터는 백제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기와를 쌓은 와적기단을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목탑터 심초석 부근에서 금동미륵보살입상(보물)와 석조여래좌상(보물)가 출토되었으며, 칠지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금당터에서도 금동제방울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군수리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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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왕흥사지(사적), 2010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왕흥사지(사적) 절터이다. 부여 부소산성 맞은편 금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의 옛 절터이다. 왕흥사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여러 문헌에 남아 있다.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사찰의 가람배치가 확인되었으며 기와편을 비롯하여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가람배치는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된 형태로 1탑 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목탑터 심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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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사적), 백제 무왕이 세운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미륵사지(사적)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 창건한 백제 최대이자 신라 황룡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대형 사찰이다. 석탑 수리과정에서 출토된 사리봉영기에 따르면 백제 왕후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석탑(국보)만 남아 있는데 석재를 이용하여 목탑 형태를 구현해 놓다.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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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사찰로의 변화.
왕궁리유적지는 오층석탑(국보)의 존재로 사찰이 있었던 절터로 알려져 있었다. 이곳이 언제 사찰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무왕이 죽은뒤 그를 기리는 원찰로 성격이 바뀐것으로 보고 있다. 왕궁 중심부에 있던 중요 건물을 설치하고 목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의 1탑 1금당식 사찰이 조성되었다. 통일신라 때 사찰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찰과 관련된 유 물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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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 확인되는 궁궐터
전북 익산시 왕궁면과 금마면에 있는 왕궁리 유적(사적)이다. 오층석탑이 남아 있던 이곳은 마한의 도읍지설 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백제후기에서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 확인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유적은 백제 무왕 때 조성은 궁성 영역과 백제말 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사찰영역이 혼재되어 있다. 궁성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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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제석사지(사적), 왕궁리 궁성을 수호하기 위해 세운 사찰 절터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제석사지(사적) 절터이다. 제석사는 백제 왕실의 번창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왕실 사찰로 왕궁리유적에서 동쪽으로 1.5 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무왕이 이곳 왕궁리로 궁성에 세우면서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 제석사에 대한 기록은 백제 무왕 때 천도한 기록과 낙뢰로 인한 화재 기록이 있다. ‘제석사’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에 옛 절터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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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사적), 천불천탑을 세워 조성한 사찰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운주사지(사적)이다. 운주사는 돌로 만든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구씩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현재는 절터에 석불 93구와 석탑 21기가 남아 있다. 운주사는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많은 석탑과 석불과 함께 창건했다고 전하나 옛기록이나 유물조사 등에서 밝혀진 것은 아니다. 운주사는 나즈막한 동산이 만든 작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 가공하기 쉬운 응회암이 많은 자연조건과 천불천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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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봉업사지, 고려 태조 진영을 모셨던 사찰 터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인 봉업사지(奉業寺址)이다. 오층석탑(보물)과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옛 절터였음을 알 수 있고, 대부분은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 태조 진영을 모셨던 비봉산 아래 봉업사’라는 기록과 <고려사>에 ‘공민왕이 죽주에 이르러 봉업사에서 태조의 진영을 알현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66년에 ‘봉업사’라는 사찰이 이름이 적힌 향완과 반자가 발굴되어 문헌에 기록되어 있던 봉업사가 이 곳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