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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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 강화의 민속
강화역사박물관에는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속품을 전시하고 있다. 민속품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가구를 비롯하여 사랑방에서 바깥주인이 사용하던 문방구, 안방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생활용품들을 들 수 있다. 민속품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물건으로 오래세월 사용하는 동안 대부분 낡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많아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생활용품조차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민속품들은 19세말 또는 20세기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유물로서 큰 가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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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 개항기의 강화
병자호란 이후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조선 정부는 강화도를 책임자를 정2품 강화유수로 하고, 군사와 행정을 총괄하게 하였다. 또한 강화산성, 정족산성 등을 보강하고 해안에 5진7보53돈대를 설치하는 등 국방을 강화하였다. 또한 강화갯벌들을 간척하여 농토를 넓혀 식량자급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이러한 조선의 대비책과는 정반대로 구한말 조선의 위협은 해양세력으로부터 찾아왔으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조선은 서양함대에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강화행궁이 약탈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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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 조선시대의 강화
조선시대 강화도는 삼남지방과 평안도, 황해도에서 생산된 물자와 세금으로 걷어들인 곡식들이 서남해안 연안항로를 거쳐 한강으로 모이는 서울이 입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또한 지리적 장점과 비교적 넓은 농지가 있어 국가 비상시를 대비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대몽항쟁의 경험으로 병자호란 때 국왕이 피신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으나, 청나라의 치밀한 공략으로 강화도가 점령되기도 했다.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에는 행궁을 설치하고 방어시설로 강화산성과 5진7보53돈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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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치조, 정전인 중화전(보물)과 조정
덕수궁 중화전(보물)은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조례, 외국 사신 접견 등 주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궁궐의 정전으로 1902년에 완공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06년에 중건한 건물이다. 처음 중화전을 세웠을 때는 경복궁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2층 건물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규모가 축소되어 단층으로 지어졌다. 구한말 조선의 경제력을 보여주듯이 다른 궁궐의 건물에 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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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외조, 대한문에서 중화문까지
대한문은 삼문이 있는 단층건물이다. 덕수궁의 원래 정문은 정전인 중화전 정면에 있던 인화문이었는데 1904년 화재로 중화전 등을 재건할 때 환구단을 중심으로 현 시청광장 주변이 도심의 중심지로 바뀌면서 동쪽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으로 이름을 고쳐서 정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서울의 중심 도로인 태평로를 확장할 때 여러차례 이전하면서 현재 위치에 자리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대한문을 들어서면 돌다리인 금천교가 대한문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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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후원, 춘당지와 관덕정
춘당지는 창경궁 후원에 있는 큰 연못으로 창경궁을 대표하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동물원 시절부터 창경원으로 대표하는 장면으로 많이 알려진 곳으로 창경궁 후원의 울창한 수목과 함께 도심속에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춘당지는 동궐 후원의 여러 연못을 지나서 흘러 내려온 물이 모여서 큰 연못을 이루고 있다. 춘당지는 윗쪽 작은 연못인 소춘당지와 아래쪽 큰 연못인 대춘당지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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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 후궁들의 거처
대비들의 거처였던 양화당 아래쪽에는 후궁들의 거처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춘헌과 집복헌이 있다. 사도세자와 순조가 이곳에서 태어났고, 정조가 자주 머물렀고, 승하한 장소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어서 지금까지 건물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원래는 2개의 집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순조 때 큰 화재로 불탄 것을 현재의 모습을 중건하였다. 이 건물은 기본적으로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가옥으로, 양반 사대부들이 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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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보물)과 양화당
창경궁 함인정 뒷편으로 침전건물인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 양화당이 남아 있다. 4동이 건물 모두 비슷한 규모의 건물로 국왕과 왕비, 대비들을 위한 처소로 지어진 건물이다. 동궐에서 국왕의 처소는 창덕궁이 중심이었기때문에 이 건물들은 국왕부부, 세자부부, 대비들이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넓은 마당에 큰 건물들만 남아 있는데, 원래는 각 건물들이 행각으로 둘러져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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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치조, 편전인 문정전과 숭문당, 함인정
창경궁은 왕실 어른들과 후궁들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거처할 목적으로 세운 이궁(離宮)으로 임진왜란 전까지는 국왕이 머물거나 업무를 보는 공간이 아니었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을 중건하지 않고 창덕궁이 법궁 역할을 하면서 이를 보조하는 궁궐로서 역할을 갖게 되었다. 창경궁도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정전인 명정전과 편전인 문정전을 두고 있다. 문정전은 편전으로 창덕궁 선정전과 비슷한 규모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많이 사용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