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유적지
-
제천 청풍 망월산성, 삼국시대 남한강변에 쌓은 산성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망월산성이다. 망월산(해발 373 m) 정상부를 돌로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495 m이다.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와 고구려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시기에 쌓은 산성 중 하나이다. 성벽은 대부분 옛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한 것이지만 서남쪽에는 원래 쌓았던 석축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성벽을 쌓은 양식이나 형태가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하며, 신라가…
-
제천 청풍 응청각, 청풍도호부 관아 객사에 딸린 작은 정자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응청각(凝淸閣)이다. 청풍도호부 관아 객사 누각이었던 한벽루(보물) 옆에 있던 것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관아에서 주최하던 각종 연회에 이용되었던 한벽루와는 달리 응청각은 조선시대 중요 교통로에 있었던 청풍도호부를 방문하는 고위 인사들이 묵었던 숙소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2층 누각 형태의 정자이다.…
-
제천 장락사지, 삼국시대 당나라와 교류를 보여주는 남한강유역 절터
충북 제천시 장락동에 있는 옛 절터인 장락사지(長樂寺址)이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칠층모전석탑(보물)가 남아 있다. 장락사는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되어 조선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경에 폐사되었다. 삼국시대 당나라와 교류가 많았던 신라의 특성이 반영된 남한강 유역과 경북 북부지방 사찰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 발굴.조사 결과 여러 건물터와 담장, 우물 등이 확인되었으며 기와류같은 건축부재와 생활용품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
제천 입석리 선돌, 마을 입구에 세워졌던 큰 돌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선돌이다.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7개의 돌을 쌓아 만든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선돌이다. 충북지방에서 확인된 선돌 중 가장 큰 편으로 위쪽이 뾰족한 남성 선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입석리’라는 마을 이름도 이 선돌에서 유래하였다. 선돌은 길쭉한 자연석 또는 일부분 가공한 기둥 모양을 돌을 땅위에 세워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로…
-
제천 점말동굴, 남한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구석기시대 동굴유적
충북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에 있는 점말동굴 유적이다. 1973년 남한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시대 동굴 유적이다.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동굴로 큰 동굴을 중심으로 6개의 가지굴이 있다. 동굴은 입구 너비가 2 ~ 3 m이며, 길이는 12 ~ 13 m 정도이다. 발굴.조사 결과 전기.중기.후기 구석기 문화층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털코뿔소.동굴곰,짧은꼬리 원숭의 등의 동물화석과 석기.뼈연모.식물화석 등이 확인되었다. 동굴에는 법당의 들보를 박았던 흔적이…
-
제천 의림지와 제림(명승), 삼한시대에 쌓은 오래된 수리시설
충북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와 제림(명승)이다. 의림지(義林池)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로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깊은 유적지이기도 하다. 충청도를 호서(湖西)지방이라 부르는 것도 의림 서쪽에 있다는 뜻이며, 제천의 옛 이름인 (奈堤, 큰제방)도 큰 제방있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때 크게 수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다시 쌓으면서…
-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이다. 낙동강 지류인 황강변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힜는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총 1,000여기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중 합천박물관 뒷편 언덕에 봉분의 형태를 갖춘 18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이 곳은 고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와 가꾸우며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약 7 km 정도 떨어져 있다. 대가야 중심지였던…
-
경상도 창녕현 관아, 정청 기둥과 지붕만 남아 있는 객사
창녕현(昌寧縣)은 조선시대 창녕읍과 주변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 조직이다. 삼국시대 비화가야의 중심지역으로 당시 지배층의 무덤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으며 고려때까지는 창녕군이 유지되다가 조선 태종 때 종6품 현감이 고을 수령인 창녕현으로 강등되었다. 옛 창녕현 관아 건물로는 객사가 있으며, 관아에서 운영했던 석빙고(보물), 창녕 현감을 지냈던 인물들을 위해 세원 송덕비, 구함말에 세원 척화비 등이 남아 있다.…
-
창녕 송현동 고분군(사적), 삼국시대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사적)이다. 창녕읍에서 화왕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삼국시대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들이다. 아래쪽에 있는 교동고분군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무덤의 성격은 거의 비슷하여 지금은 2개의 고분군이 통합되어 사적5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도굴에 가까운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보고서는 남아 있지 않으며 발굴된 유물들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