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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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대자은사 대안탑, 당나라 장안의 랜드마크였던 탑
중국 시안시 대자은사(大慈恩寺)에 있는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이다. 당고종 때인 652년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1959년에 현재의 모습을 수리되었다.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으며 7층에서 시안시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당나라 건축과 문화를 이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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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당 대명궁 유적, 당나라 황궁
중국 시안에 있는 당나라 황궁이었던 대명궁(大明宮) 유적이다. 당 고종 때(662년) 처음 지어져 220년 동안 당나라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당나라 초기에는 장안성 안에 있는 수나라 때 정궁으로 지은 태극궁을 사용했으나 습하고 벌레가 많아 이궁(離宮)으로 건설되었는데 당 고종 때 대대적을 수리하면서 정궁이 되었다. 당나라 말 황소의 난(875 ~ 884년) 이후 지방 병마절도사들의 반란으로 파괴된 후 황궁의 기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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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전시공간은 3개의 갱과 청동전차와 병마용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으로 되어 있다. 3곳의 병마용갱은 전체 면적 20,000 ㎡ 이상이며 8,000 구 이상의 인물을 표현한 병용(兵俑)과 수백점의 말과 전차, 10,000 점 이상의 청동제 무기 등이 출토되었다. 병마용갱 옆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2호갱에서 출토된 청동제 말과 전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진시황이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청동으로 제작하여 묻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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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3호갱
시안 진시황릉 3호갱은 197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1호갱 북쪽 25 m, 2호갱 서쪽 120 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 28.8 m, 남북 24.6 m 정도로 U자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 520 ㎡ 정도로 1, 2호 갱에 비해 그 규모는 상당히 작은 편이다. 1977년 9개월 간 첫 발굴.조사 후 보존을 위해 다시 흙으로 덮었으며, 1988년 전시장을 지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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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2호갱, 발굴현장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곳
1호갱에서 북쪽으로 20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2호갱은 197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L’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동서로 124 m, 남북으로 98 m 정도 규모이다. 보병 위주로 구성된 1호갱과는 달리 궁수, 전차, 기병, 보병 등이 4개 대열로 배치되어 있다. 전체 대형은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투시 유연하게 병력을 재배치할 수 있는 형태로 진(秦)의 독특한 군사전략과 대형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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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1호갱, 처음 발견된 곳
진시황 병마용갱(秦始皇兵马俑坑, Emperor Qin’s Terracotta pits)은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큰 구덩이로, 진시황의 수도를 지키는 군사력을 상징한다. 이 유적은 1974년 농부가 우물을 뚫기 위해 구덩이를 파면서 병마용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고고학적인 발굴.조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오고 있으며 병마용 박물관을 통해 그 내용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현재까지 4호갱까지 확인되었으며 세부적인 발굴작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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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시안성벽,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 성곽
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시안 성벽(西安 城墻)이다. 한(漢)을 비롯하여 가장 많은 중국 역대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시안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都城)이다. 수(隋) 때 현재의 위치에 도성을 처음 쌓았으며 당나말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면서 장안성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의 성곽은 명(明) 때 주원장 둘째 아들이 진왕으로 봉해지면서 다시 쌓았는 당나라 황성 터의 성을 연장하여 다시 쌓았으며 그 후 여러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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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비림,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
시안(西安) 비림(碑林)은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으로 송나라 때(1087년) 처음 조성되었다. 당나라 말 혼란기에 중요한 비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문묘에 집중시켰으며 북송 때(1087년) 유교 주요 경전을 새긴 개성석경비(开成石经碑)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각 왕조에서는 수집된 귀한 비석들을 이곳으로 옮겼으며 청나라 때 비석들들이 늘어서 있다고 하여 비림(碑林)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비림에 있는 비석들을 시대 순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