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비석/금석문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보물)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사 경내에 있는 철감선사탑비(보물)이다. 글이 적힌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은 용의 머리와 거북모양의 몸체로 되어 있는데 앞발을 살짝 들고 있다. 머릿돌에는 용무늬는 생략하고 구름무늬만 조각되어 있다. 철감선사탑(국보)과 마찬가지로 조각수법이 세밀하고 힘이 넘친다. 머릿돌 앞쪽에는 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철감선사(徹鑒禪師)는 통일신라 때 승려로, 이름은 도윤(道允)이며, 호는 쌍봉(雙峯)이다.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보물)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사 경내에 있는 징효대사탑비(보물)이다. 통일신라말 선종 구산선문 중 한곳인 흥녕사를 크게 발전시킨 징효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비이다. 거북받침돌에 비몸을 올려놓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은 전형적인 당나라 비석 양식을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발을 사실적으로 섬세하고 조각하고 있다. 반면에 거북등에 새겨진 껍질은 형식적인 면을 보여주고…
-
중국 베이징 명십삼릉 정릉, 만력제 신도비로 보이는 비석
베이징 명십삼릉 정릉(Dingling, 定陵) 입구 광장에 세워져 있는 비석이다. 명나라 13대 신종 만력제의 신도비로 보이는 비석으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당나라 비석 양식을 하고 있다. 화강석을 많이 사용하는 우리나라 비석과는 달리 대리석을 조각해 만들었다. 거북받침돌에 비해 글자를 새겨놓은 비몸이 상대적으로 크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중국 비석의 특징인 것으로 보인다. 거북받침돌은 크고 웅장하기는 하지만 형식적이고 정형화된…
-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보물)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장사 경내에 있는 혜소국사비(보물)이다. 고려시대 승려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다. 현재 받침돌인 귀부와 몸돌, 머릿돌이 따로 떨어져 있는 상태로 있다. 혜소국사의 행적이 새겨진 몸돌은 흑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옆면에는 길게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고 있다. 비몸 일부가 파손되기는 했지만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고려 문종 14년(1060)에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 석종비(보물)이다.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선사 승탑 옆에 세워져 있다.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선사 승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적어 놓았다. 거북받침돌, 몸돌, 용이 조각된 머릿돌로 구성된 당나라 비석 형태의 기존 비석과는 달리 단순한 사각형 받침돌과 몸돌, 지붕모양 머릿돌로 구성된 형태를 하고 있다. 고려말 이후 새로운 비석 형식이다.…
-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고려말 이색이 대장각을 세운 내력을 적은 비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에 있는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이다.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신륵사 경내 동쪽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고려말 유학자이자 조선의 건국에 반대했던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장경을 인쇄하고 보관하기 위해 대장각을 세우면서 그 내력을 적은 비석이다. 연꽃무늬를 새긴 대석위에 글씨를 적은 비몸을 세우고 양쪽에 기둥을 댄 다음 그위에 지붕을 놓은 형태로 조선초기 비석의…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선각왕사비(보물)이다. 동쪽편에 나옹선사탑과 떨어져 회암사 서쪽편 언덕에 홀로 서 있었다. 고려초기 탑비처럼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려져 있으며 머릿돌은 따로 올려놓지 않았다. 몸돌 윗부분에 두마리 용을 생동감있게 조각했으며 중앙에 비명칭을 적은 공간을 두고 있다. 비문의 글은 고려말 학자 이색이 짓고 글씨는 권중화가 쓴것으로 중원고구려비 이후 처음으로 예서체로 적혀져 있다. 1997년에 성묘객의…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비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무학대사탑비이다. 무학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적은 탑비로 무학대사탑 앞에 세워져 있다. 비문에는 그가 원나라에 들어가 나옹선사의 제자가 된일, 한양천도에 역할을 한 일 등이 적혀 있다. 원래 태종 10년에 변계량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조선후기 순조때 파괴되어 다시 세웠다. 고려시대에 만든 많은 탑비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많이 떨어지며 단순한 4각받침돌 위에 비석을 세워놓고…
-
영월 엄흥도 정려각, 단종 시신을 거두었던 영월 호장 엄흥도에 내려진 정려
강원도 영월군 영흥리 조선 6대 단종의 장릉 능역내에 있는 엄흥도 정려각이다. 엄흥도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귀향온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은 후 버려진 시신을 거두어 묻어 주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 정려가 세워졌으며 각을 세웠다. 이후 순조때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이후 공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사육신과 함께 영월 창절사에 배향되었다. 정려각은 내부 비석이 있는 비각 형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