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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4년 11월

  • [수원화성박물관] 장용영(壯勇營), 정조의 직할부대

    장용영(壯勇營)은 정조가 왕권강화를 위해 설치한 군영으로 국왕을 호위하는 직할부대라 할 수 있다. 정조는 집권초기 자신을 시해하려는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인 1785년 국왕호위를 전담할 장용위(壯勇衛)를 창설하였으며, 1793년에는 이를 군영(軍營)의 하나인 장용영으로 확대개편하였다. 장용은 크게 한양에 주둔하면서 궁궐을 호위하는 내영과 수원화성에 주둔하면서 외곽방어를 지원하는 외영으로 구성되었다. 조선후기 수도를 방어하는 중앙의 5군영은 조선후기에 형성된 무반가문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이들은 노론을…

  • [수원화성박물관] 정조의 화성행차

    조선후기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방문을 비롯해 재위기간 동안 총66회의 궁궐밖 행차를 했다. 또한 현릉원 자리에 있었던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화성을 축성하고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직할부대인 외장용을 설치하였다. 이는 정조의 개혁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당시 기득권세력이었던 노론세력을 견제하고 강력한 왕권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정조의 화성행차에는 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었는데, 당시 행렬에 동원되었던 6,000여명의…

  • [수원화성박물관] 화성의 축성과 도시의 건설

    수원화성(사적3호)은 정조가 융건릉이 있는 화성부근에 수원부 읍치를 옮기면서 대규모로 쌓은 성곽으로 한양도성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은 읍성이다. 성곽은 서쪽 팔달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낮은 구릉을 연결하여 쌓은 둘레 약5.7km의 읍성이다. 정조18년(1794년)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만에 완공하였다. 수원화성의 건설에는 당대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과 유형원 등이 참여했으며, 거중기를 비롯한 다양한 신기술이 적용되었다. 화성은 한양도성을 비롯한 조선시대 읍치에 축성된 대부분은…

  •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을 건설한 사람들

    수원 화성의 건설은 1789년(정조13) 수원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읍치를 화산에서 현재의 위치인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면서 시작하였다. 수원지역은 조선시대 육상교통로 중 가장 통행량이 많고 중요했던 제주대로의 핵심으로 삼남지방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한양을 올 때 반드서 거쳐야 했던 지역이다. 수원에 화성이 건설되기 전에는 수원부 읍치는 융건릉이 있는 화산일대였으나 정조가 자신의 개혁정치를 펼치고 노후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머물기…

  • 경기도 안성군 관아, 고려 주심포양식이 남아 있는 안성객사

    안성시에는 남아 있는 조선시대 안성군 관아의 중심이 되는 객사(客舍)와 중등교육기관인 향교가 옛 관아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객사는 국왕의 궐패를 모시고,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중앙관리가 잠시 머무는 숙소역할을 하는 곳으로 각 지역마다 해당 지역의 규모에 걸맞는 규모의 객사를 갖추고 있었는데, 안성은 전국에서 평균 정도 규모의 객사를 갖추고 있었다. 원래 안성읍내에 있던 것을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1995년 수리.해체를…

  • 수원 화령전(사적),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영전

    수원 화성행궁에서 정전에 해당하는 봉수당 오른쪽에는 각종 연회나 행사가 열리던 화성행궁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인 낙남헌과 오래된 목조 건물을 중심으로 한 건물군인 화령전(華寧殿, 사적)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수원화성과 행궁을 건설한 정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영전(影殿)으로 정조의 아들인 순조가 화성에 모셔진 정조의 건릉(健陵)과 사도세자의 (隆陵)을 참배할 때 문안을 올리기 위해 세었다고 한다. 화령전은 정조의 어진을 모신…

  • 수원부 관아, 낙남헌과 득중정

    화성행궁에 속해 있던 많은 전각 중에서 원래 있던 건물 중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낙남헌(落南軒)이다. 낙남헌은 행궁 북쪽편에 위치한 건물로 화성유수가 손님을 접대하거나 연회가 펼쳐지던 곳으로 관아에서 누각이라 할 수 있다. 화성행궁 누각인 낙남헌은 실제로는 수원유수가 사용하기 위해 세운것이 아니라 국왕이 행차할 때 사용하기 위한 건물이다. 낙남헌은 넓은 마루가 있고 앞 쪽에는 마당이 있어 행사하기…

  • 수원부, 부속관청과 장용외영

    화성행궁은 정조가 현륭원 행차시 임시로 머물던 행궁으로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다. 이곳은 국왕 행차시 머무는 행궁과 수원유수가 근무하던 수원부 관아, 그리고 정조의 친위부대라 할 수 있는 장용영 군사들이 머물던 군영의 역할을 같이 하던 곳이다. 정조가 화성축성을 끝냈을 무렵에는 전체 430칸으로  궁궐에 버금가는 규모의 행궁이 완성되었다.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낙남헌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허물어졌다. 현재의 건물들온…

  • 수원부 관아, 내아인 유여택과 복내당

    화성행궁(華城行宮)은 국왕이 임시 거처로 사용되는 공간이자, 수원유수(留守)가 집무를 보는 수원부(水原府) 관아이기도 하다. 정조가 머물렀던 행궁의 중심 건물인 봉수당(奉壽堂)이 동헌에 해당한다면, 수원유수가 생활하는 공간인 내아(內衙)는 사랑채에 해당한는 유여택(維與宅), 안채에 해당하는 복내당(福內堂)과 혜경궁 홍씨가 머물렀던 장락당(長樂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화성을 건설하면서 수원부 읍치(邑治)를 화성을 옮길때 행궁으로 조성했기때문에 다른 관아에 비해서 살림집에 해당하는 내아의 규모가 큰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