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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무령왕릉실] 무령왕 관장식을 비롯한 금속공예 장신구

웅진시대 백제와 공주를 대표하는 유물인 무령왕 금제장식과 신발, 뒤꽂이, 허리띠장식과 봉황무늬가 있는 큰 칼 등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백제의 화려한 문화 수준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대부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주로 주조, 단조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에 다양한 기법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웅진기 백제의 화려한 금속공예기술을 잘 보여준다.

무령왕은 『삼국사기』에는 동성왕의 아들로, 『일본서기』에는 동성왕의 이복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귀족세력의 반란으로 동성왕이 살해된 후 즉위하였다.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의 압력을 물리치고, 중국 남조 양나라와 우호관계를 강화하고 많은 문물을 받아 들였으며, 일본에 백제문물을 전파하였다고 한다. 무령왕릉 입구 묘지석에 출생과 사망연도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무령왕릉 또한 중국 남조의 무덤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무령왕의 생애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은 백제 개로왕 8년(462)에 태어났다. 이름은 사마(斯麻), 또는 융(隆)이었고 성품은 인자하고 관대하였다고 한다. 무령왕은 서기 501년 동성왕의 뒤를 이어 40세에 왕위에 올라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피례해진 민생을 안정시키고 고구려의 거듭되는 침입을 물리쳤다. 또 대외적으로는 신라.가야와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일본 열도의 왜(倭)에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보내 우수한 백제 문물을 전파하였다. 중국 남조의 양(梁)나라에도 사신을 파견하는 등 우호 관계를 강화하며 동아시아 국제무대에서 백제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였다. 무령왕은 23년간 선정을 펼친 뒤 계묘년(523)에 6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무령왕 흉상.

『삼국사기』 기록 등을 바탕으로 제작한 무령왕의 모습이다.  깃털장식을 하고 있는 고구려 관모와 장식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령왕 흉상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무령왕의 모습(키가 8척이나 되고 눈썹과 눈이 그림과 같고 성품이 인자하고 관후하여….)과 백제인의 원류가 되는 한반도 북부 지역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백제인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충청 지역 주민의 얼굴이나 머리뼈 모양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무령왕의 즉위 12년(513) 만 52세의 모습을 표현 기준을 하였고, 조용전 교수(前서울교육대학교)의 의견을 참고하여 임영호 조각가가 1999년에 제작하였습니다. 이 상은 같은 해 문화관광부 동상영정심의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표준 동상으로 공인 받았습니다. <출처: 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출토 금속 공예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부장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각종 금속 공예품이다. 금제 관장식, 귀고리, 목걸이, 허리띠와 같이 왕과 왕비가 착용했던 금.은제 장신구를 비롯하여 청동 그릇과 수저, 동탁 은잔, 청동 거울 등의 다양한 금속 공예품에는 백제 장인의 빼어난 안목과 섬세한 공예 기법이 담겨 있다. 무령왕릉에 부장된 금속 공예품은 주로 주조, 단조기법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공예품의 표면은 다시 투조(透彫, 금속판을 뚫거나 오려내 무늬를 만듦), 조금(彫金, 작은 정을 이용해 무늬를 새김), 누금(鏤金, 금실이나 금 알갱이를 붙여 무늬를 만듦)기법 등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출처:공주박물관>

무령왕 금제관식, 국보, 삼국시대 백제.

웅진기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비단으로 만든 관모에 꽃아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의 깃털모양 관모 장식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꼿이 피어오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뒷쪽에서 본 모습.

왕의 관꾸미개는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가 좌우 비대칭으로 표현되었고, 둥근 달개 장식이 달려 있다. 왕비의 관꾸미개와 마찬가지로 비단으로 만든 관모에 꽂아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무령왕 금제뒤꽂이, 국보, 삼국시대 백제.

관장식과 함께 관모를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머리부분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뒤꽂이는 머리에 꽂아 머리모양을 흐트러지지 않게 해주는 실용적인 기능과 함께 뒤꽂이 자체의 장식으로 머리를 더욱 화려하게 꾸며주는 장식적인 용도를 가진 장신구이다. <출처:공주박물관>

무령왕 금귀걸이, 국보 , 삼국시대 백제.

왕의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장식을 길게 늘어뜨렸다. 금판으로 된 나뭇잎 모양 장식이 달려 있다.


흑옥 목걸이(왕), 흑옥 동물모양 장식.

옥의 일종인 흑옥으로 만들어졌다.

흑옥(黑玉),
흑옥이란 고대 식물이 물에 흘러 퇴적되어 토양의 압력을 받아 오랜 세월동안 화석화되어 만들어진 ‘보석’의 일종이다. 기존에는 탄목(炭木), 탄정(炭精) 등으로 불리웠으나, 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흑옥으로 밝혀졌다. 무령왕릉에서는 흑옥으로 만든 동물모양장식 2점을 비롯하여 대추모양구슬, 납작구술 등 다양한 장식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대추모양구슬과 납작구슬의 구멍 내부에는 구슬을 연결하는데 사용한 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금.은 허리띠장식.

유목민족 특징이 반영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허리띠와는 달리 장식을 많이 달고 있지 않다. 전통적인 의례용 복식 형태를 하고 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허리띠 장식의 백호(白虎), 주작(朱雀) 문양.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왕의 허리 부위에서 2벌의 금.은 허리띠장식이 출토되었다. 그 중 한 벌은 허리띠 장식의 완전한 구성을 갖추고 있어 웅진백제기 허리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금동신발(왕)

용.봉황을 장식한 큰칼, 삼국시대 백제,

무덤 주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위세품이다. 유목민족의 특징이 반영된 큰고리가 있는 환도대도 형태를 하고 있다.

용.봉황을 장식한 큰 칼은 주로 삼국시대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는데, 무덤의 주인공이 최고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출처:공주박물관>

장식손칼, 삼국시대 백제

은으로 장식한 창과 창자루, 삼국시대 백제

무령왕릉의 바닥에서 발견된 삼나무로 만든 자루로 표면에는 옻칠이 되어 있다. 남아 있는 길이는 85cm 정도이다. 활처럼 휘어져 있지만 원래는 곧게 뻗어있고, 길이도 더 길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름은 2cm 정도로 무령왕릉 바닥에서 출토된 은으로 장식한 창의 자루 결합부분 구멍 크기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왕릉 내부에 세워졌던 창의 자루로 추정된다.

무령왕 배개(복제품),

발굴당시 무령왕 베개는 그 형체을 알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무령왕비 베개를 기준으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무령왕 발받침(복제품), 국보.

나무로 만들어진 왕의 발받침이다. 전면에 금은색 옻칠을 하고 금판을 오려 거북등 무늬를 만들었다. 금꽃을 거북등 무늬 모서리와 중앙을 장식하여 화려하게 꾸며놓고 있다.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