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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후원, 춘당지와 관덕정

춘당지는 창경궁 후원에 있는 큰 연못으로 창경궁을 대표하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동물원 시절부터 창경원으로 대표하는 장면으로 많이 알려진 곳으로 창경궁 후원의 울창한 수목과 함께 도심속에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춘당지는 동궐 후원의 여러 연못을 지나서 흘러 내려온 물이 모여서 큰 연못을 이루고 있다. 춘당지는 윗쪽 작은 연못인 소춘당지와 아래쪽 큰 연못인 대춘당지로 이루어 졌다. 많은 전각들로 가득찬 경복궁과는 달리 창경궁은 동궐 후원과 연결된 울창한 숲과 산책로 덕분에 도심에서 잠시 숲을 즐기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심공원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경복궁이나 북경 자금성과는 달리 후원이 상당히 넓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원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자연친화적이며, 넓은 공간때문에 역대 왕들이 경복궁의 중건을 미루고 동궐을 계속 확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창경궁 후원 춘당지>

조선시대 창경궁에는 소춘당지만 있었고 아래쪽 대춘당지는 국왕과 왕비가 직접 농사를 짓는 논과 뽕나무밭이 있었고, 그 앞에는 넓은 마당인 춘당대가 있었다고 한다. 동궐에서 외부인을 초청하여 큰 연회나 공식적인 행사를 하던 장소는 영화당 앞 마당이었고, 춘당지 뒷편으로는 활터였던 관덕정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춘당지 일대가 창경궁에 속해 있지만, 실제로는 궁궐 바깥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관덕정을 지나면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으로 연결된다

<동궐도에 표현된 춘당지 일대>

창경궁과는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앞쪽에는 국왕 직접 농사를 짓던 11개의 논과 뽕나무밭이 있고, 뒷편에 원래의 춘당지가 있다. 서쪽편으로 국왕이 연회를 베풀거나 각종 행사를 개최했던 영화당과 넒은 마당이 보인다. 뽕나무밭 옆 절벽으로 표현된 부분이 춘당대였던 것 같다.

<대춘당지>

대춘당지는 1909년 이곳에 일제가 동물원을 조성하면서 연못을 파서 일본식 정원으로 꾸몄던 것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면서 가운데 섬을 조성하는 등 한국적인 정원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춘당지 연못의 작은 섬>

 춘당지 가운데에는 한국 정원의 연못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섬을 조성하였다. 일제가 춘당지를 조성할 때는 없었던 것을 1980년대 창경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이 섬을 만들어 한국적인 정원으로 탈바꿈해 놓고 있다. 경주 안압지 연못을 참조한 것 같다.

<연못가 수양버들>

<연못가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

<연못가 산책로>

<팔각칠층석탑(보물)>

연못가에 있는 창경궁 팔각칠층석탑(보물)이다. 우리나라 석탑은 아니고 명나라 석탑이다. 일제가 만주에 있던 것을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소춘당지>

동궐 후원을 흘러내려온 냇물이 모여서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다. 원래 창경궁에 있었던 연못으로 춘당대 아래에 있어 춘당지라 불렀다.

춘당지 일원
춘당지는 창덕궁 쪽 절벽인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이었으나 지금은 담장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의 소춘당지가 원래의 춘당지이고, 대춘당지는 1909년 내농포에 속한 11개 논을 하나의 연못으로 만든 것이다. 내농포는 임금과 왕비가 각기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이다. 대춘당지의 섬은 1984년에 만들었다. <출처:문화재청>

<춘당지 뒷편 산책로>

이곳은 원래 관덕정 활터에 속한 곳으로 동궐도에는 넓은 마당과 숲으로 이루어졌다.

<대온실>

춘당지 뒷편 넓은 마당에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최초로 지은 대온실이 있다. 이곳은 활터가 있던 넓은 마당으로 군사훈련도 했다고 한다.

<관덕정>

성균관으로 연결되는 집춘문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관덕정이다. 국왕이 활을 쏘던 활터의 정자로 그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원래 동궐에서 공식적인 활터로 창경궁 바깥쪽 언덕에 위치한 현재 서울대학병원이 있는 함춘원이 있지만, 거리가 약간 떨어져 있고, 궁밖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도 활터를 별도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관덕정 앞 활을 쏘는 자리>

<관덕정 안쪽 집춘문으로 연결되는 길>

조선시대 국왕은 이길을 통해 성균관과 문묘(대성전)을 왕래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국왕은 문묘나 성균관을 방문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 길은 자주 이용했던 길이다.

관덕정과 집춘문
관덕정은 1642년에 지었으며 활을 쏘던 정자였다. 앞쪽의 넓은 빈터는 군사훈련과 무과시험장으로 쓰였다고 전한다. 정자 뒤로는 단풍숲이 우거져서 여러 임금들이 단풍으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전한다. 집춘문은 관덕정 북쪽 담장에 난 궁문으로 문묘가 마주 보이는 곳에 있다. 역대 임금들이 문묘로 나갈 때는 이 문을 이용했다. <출처:문화재청>

<동궐 후원 출입문>

대온실이 있는 마당 서쪽편으로는 동궐 후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후원 연못중 하나인 애련지와 일반 사대부저택처럼 지은 연경당이 있다.

<홍화문으로 내려가는 길>

<금천>

춘당지 연못에서 흘러내려 궁궐 앞을 지나는 금천이다. 연못이 있어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