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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서삼릉 예릉(睿陵, 사적), 조선 25대 철종과 원비 철인왕후의 능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서삼릉(사적)에 있는 예릉(睿陵)이다. 조선 25대 철종과 원비 철인왕후의 능으로 왕과 왕비의 능이 나란히 배치된 쌍릉형식을 하고 있다. 조선의 왕릉제도에 따라 국가에서 조성한 마지막 왕릉으로 흥선대원군 주도로 왕권 강화를 보여 주기 위해 석물과 부속 건축물을 웅장하게 지었다. 현재 부속건물로는 정자각과 비각이 남아 있다.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철종은 재위기간동안 세도정치에 눌려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 철종비 철인왕후는 철종 사후 조대로 알려진 신정왕후와 함께 대비로 대원군의 개혁정치를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삼릉은 희릉, 효릉, 예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종 때 내곡동 헌릉부근에 있던 희릉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곳으로 천장하면서 능역으로 조성되었다. 이후 아들인 인종과 인종비의 효릉, 25대 철종과 철종비의 예릉이 들어서면서 서삼릉으로 불리기 되었다. 서삼릉에는 왕릉 외 소현세자의 소현묘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조선왕실의 태실, 왕자묘, 후궁묘, 공.옹주묘 등을 대부분 옮겼다.

<고양 서삼릉 예릉(사적)>

조선 25대 철종과 철인왕후 예릉(睿陵). 흥선대원군이 주도하여 조성한 능으로 왕실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왕릉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다른 왕릉과는 달리 삼도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정자각 월대를 오르는 계단>

<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조선후기 정형화된 정자각 형식을 하고 있다.

<정자각 월대 내부>

정전 입구를 1단 높게 조성해 놓고 있다.

<왕릉 주인을 알려주는 표석이 있는 비각>

<정자각 앞 수복방 건물터>

다른 왕릉에 비해 앞쪽에 배치되어 있다.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쌍릉형식을 하고 있다.

고양 서삼릉 예릉, 사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예릉은 조선 25대 임금 철종과 비 철인왕후의 능이다. 조선시대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국조상례보편』에 의거한 상설제도로서는 마지막 능이다. 봉분은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이는 쌍릉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능침은 상중하계의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영조의 원릉부터는 중계, 하계의 구분을 두지 않고 문무석인을 같은 단에 배치하였다. 장명등을 중계가 아닌 하계의 끝에 배치한 것는 예릉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철종은 재위 14년 6개월 만인 1863년 33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고종은 철종의 능을 거창하고 웅장하게 꾸며 왕실의 오랜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므로 예릉의 석물과 부속 건축물들은 웅장한 규모로 조영되었다. 평소 부덕이 높았던 철종의 비 철인왕후가 1878년(고종 15)에 42세로 승하하면서 이곳에 함께 안장하여 쌍릉을 이루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