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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했던 석탑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에 있는 다층석탑(보물)이다. 주불전인 극락보전 앞 마당에 세워져 있는 높이 3m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다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석탑이나 고려시대 경천사지 석탑 등에 비하면 아담해 보인다.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도교풍의 장식이 많은 경천사지 석탑의 특징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세종대왕 영릉의 원찰 역할을 부여받으면서 불전들을 새로 지었던 성종 때 같이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 탑골공원에 남아 있는 세조대에 세워진 원각사지십층석탑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불교를 크게 장려했기때문에 신륵사가 크게 번창할 수 있었고,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석탑을 세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륵사 다층석탑은 현재 8층만 남아 있지만, 원래 그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하여 다층석탑이라 부른다. 지대석 위에 2층 기단을 쌓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훼손된 부분이 많아서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하고 섬세한 조각을 새겨놓은 상당히 화려한 석탑이다. 지대석 윗면에는 연꽃을, 하층 기단석에는 꽃을, 상층 기단석에는 화려한 용무늬를 사실적으로 조각해 놓고 있다. 탑신부에는 특별한 조각을 하지 않고 네귀퉁이에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상층부 탑신과 옥개부분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원래 모습을 알 수 없다. 사찰에서 탑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고 불교가 억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왕실의 후원을 받아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조성한 석탑이다.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3m의 다층석탑으로 주불전인 대웅보전 앞 마당에 세워져 있다.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 석탑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오른쪽에서 본 모습>

대리석으로 만든 이 석탑은 4각형의 평면을 하고 있다. 2층 기단 위에 8층 탑신이 올려져 있다. 원래는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어 다층석탑이라 부른다.

<기단부>

1층 기단석에는 연꽃문양, 파도문양이 새겨져 있다. 2층 기단석 아래와 위에는 연꽃문양이, 가운데 돌에는 화려한 용문양이 새겨져 있다.

<기단 2층 가운데 몸돌에 새겨진 조각>

도교적인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이며  사실적이면서 화려한 조각. 용과 구름 등을 새겨놓고 있다. 경천사지 석탑에서 보여지는 중요한 특징이다.

<탑신부>

탑신 몸돌 모퉁이에 기둥모양을 새겨놓은 것 외에는 특별한 조각을 새겨놓고 있지 않다.  몸돌 높이는 대체로 낮은 편이다. 지금은 8층만 남아 있고, 윗부분 탑신과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옆에서 본 모습>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이 탑은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석탑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데 비하여 특이하게도 흰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3m에 이른다. 이 탑은 기단에서 몸돌에 이르기까지 각각 하나의 돌로 조립되었다.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2층 기단을 놓았다. 하층 기단의 하대석에는 연꽃문양이, 중대석의 각 면에는 파도 문양이, 모서리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상층 기단 각 면에는 용과 구름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탑 몸돌에는 각 층마다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으며, 각층의 줄어드는 비율이 완만하다. 지붕돌의 추녀는 수평으로 흐르다가 전각에 이르러 반전을 보인다. 팔층 지붕돌 위에 작 탑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더 많은 층수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륵사가 세워진 시기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존하는 유물이 모두 고려 중엽 이후의 것이고 성종3년(1472)에 여러 건물이 다시 건립된 것으로 보아 이 석탑도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