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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 담인복식미술관

이화여대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복식과 관련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담인복식미술관이다. 이 대학 의류학교 교수를 역임한 장숙환 교수가 기증한 유물들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복식은 사대부 계층이 평상시에 입었던 심의(深衣), 관리의 복식인 단령(團領), 국가적인 행사에 입었던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을 비롯하여 궁궐 여인들이 입었던  적의(翟衣), 혼례나 진연, 진찬 등 경사스러운 날에 입었더너 원삼과 활옷, 당의 등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예복과 장신구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은 예치(禮治)를 지향한 국가로서, 오례에 따라 정비된 국가 전례(典禮)의 시행을 통해 정치가 이루어졋다. 이러한 국가적 의식을 행할 때에는 신분과 절차에 따라 격식을 갖추었는데, 복식은 그 예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예복은 당시 사회질서와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과 관리의 예복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어 왔다. 조선 초기에는 명의 예복을 그대로 수용하여 왕은 대례복으로 면복(冕服)을 입고 왕비는 대수삼(大袖衫), 하피(霞帔)를, 관리는 관복으로 단령(團領)과 복두(幞頭)를 착용하였다. 그러나 청이 들어선 이후 유교문화의 정통성을 강조한 조선중화주의 의식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예복은중국과는 달리 독자성을 띄게 되었다. 또한 사대부 남성들은 평소에도 유학자로서 몸가짐을 바로하기 위해 유교 법복인 심의(深衣)를 즐겨 입었다. 한편 조선후기 왕실 여인들은 명대 여성예복을 참고하여 만든 적의(翟衣)를 대례복으로 착용하고, 혼례나 진연, 진찬 등 경사스러운 날에는 원삼과 활옷, 당의 등의 우리식으로 꾸민 예복을 갖추었다. 이러한 예복에는 착용자의 계급과 그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상징하는 다양한 색상과 무늬가 사용되었으며, 여기에 적절한 장신구로 의식의 권위와 화려함을 더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후기 왕실의 의복과 관복을 비롯하여 여려 의식에 착용된 다양한 예복과 장신구를 선보인다. 복식을 통해 의례의 위엄과 의미를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나타내었던 선조들의 미감을 살펴보고, 문양과 색채 속에 유교적 가치에 기초한 이상적 인간상과 삶에 대한 통찰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심의(深衣>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사대부 유학자들이 평소에 입고 생활했던 복식인 심의(深衣)이다. 소박하면서도 단정하고 절제된 마음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심의(深衣)
심의는 유학자들이 법복으로 유교이 철학적 의미가 담긴 옷이다. 웃옷과 치마를 허리선으로 연결한 형태로 4폭으로 된 웃옷은 사계절을, 12폭으로 된 치마는 12달을 의미한다. 깃과 수구, 도련에는 검은 선을 둘렀으며 허리에는 심의대를 하고 그 위에 조대(條帶)를 늘였으며, 머리에는 복건을 썼다. 사규삼(四揆衫)은 관례 때 입었던 예복의 하나로 맞깃에 소매는 넓고 옆선이 트여있는 포(袍)이다. 깃과 소매 끝, 옷자락 양쪽 가장자리와 아랫 자락에 검은색 선을 대었으며, 선에는 ‘仁義禮智’, ‘壽福康寧’ 등의 문자와 박쥐문양 등을 금박하기도 하였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당의(唐衣)>

조선시대 여자들의 예복이라 할 수 있는 당의(唐衣)이다.  ‘당의’라능 이름을 볼 때 중국 당나라 복식에서 유래한것으로 보이지만 확인되지는 않고 있으며, 조선시대부터 착용한 것으로 문헌에 남아 있다.

당의(唐衣)
당의는 조선전기에 예복용으로 입던 긴 저고리가 발전한 것으로 길이는 점차 길어지고 양옆의 트임이 깊어져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 형태가 완성되었다. 당의는 소례복으로 궁에서는 평소에, 민간에서는 궁에 출입할 때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입었다. 일반적으로 초록색 비단에 다홍색으로 안을 받치고 자주색 고름에 소매 끝에는 흰 거들지를 달았으며, 비빈의 것에는 금박을 찍고 보(報)나 흉배를 달기도 하였다. 여름철에는 흰색 홑당의를 입었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복은공주 활옷(재현품)>

활옷(華衣)
활옷은 공주.옹주의 혼례복으로 사용되었던 홍장삼(紅長衫)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민간에서도 혼례에 한하여 착용하였다. 겉은 다홍색 비단을 쓰고 안은 남색을 대었으며 장수를 상징하는 연꽃.불로초.물결.바위 등과 부귀를 뜻하는 모란, 다산을 의미하는 아홉마리의 봉황과 동자 등 다양한 길상 문양과 二姓之合, 萬福之源 등의 문자를 화려하게 수놓아 복과 장수를 기원하였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당혜(唐鞋), 조선 19세기>

<화관(花冠), 조선 19세기>

<원삼(圓衫)>

궁궐에서 여자들이 입었던 예복인 원삼(圓衫)이다. 신분에 따라 색상과 문양을 다르게 했는데, 대체로 화려한 색감과 장식을 하고 있다.

원삼(圓衫)
원삼은 둥근 형태의 맞깃이 달린 궁중 예복으로 신분에 따라 색상과 문양을 달리하였다. 왕비는 홍원삼, 비빈은 자적원삼, 공주.옹주는 녹원삼을 입었으며, 대한제국 성립 이후 황후는 황원삼을 착용하였다. 이중 녹원삼은 민간에서도 착용이 허락되어 활옷과 함께 혼례복으로 사용되었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조선시대 관리들이 관복인 단령(團領), 사진: 고려대박물관>

단령(團領)
단령은 둥근 깃의 포로 관복으로 입혀졌다. 색에 대한 규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으며, 공복으로 입을 때는 복두를 쓰고 손에는 홀을 들었다. 상복으로 입을 때는 사모를 쓰고 가슴과 등에 흉배를 달아 품계를 구분하였다. 조선에서 흉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단종 2년(1454)으로 명의 제도를 따라 문관은 날짐승, 무관은 길짐승 문양을 사용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고종 떄에 문관은 쌍학과 단학, 무관은 쌍호와 단호로 바뀌었다. 단령은 서인은 혼례복으로도 허용되었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제복(祭服)>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올릴때 입는 관복인 제복(祭服). 조복과 비슷하지만 검은색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관복이라 할 수 있는 조복(朝服)>

국가 경축일에 왕에게 하례를 올릴때 근정전 앞 조정에서 품계석에 맞추어 도열하면서 입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조복(朝服).제복(祭服)
조복은 경축일에 왕에게 하례를 드릴 때나 표문을 올릴 때 관리들이 착용하였던 예복이다. 조복은 금칠한 양관과 적초의, 적초상, 백초중단, 대대, 혁대, 폐슬, 수, 패옥, 밀, 혜, 홀로 구성된다. 품계에 따라 양관의 량의 수, 허리띠와 홀의 재료, 수의 무늬, 패옥의 색상 등을 달리 하였다. 제복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낼 때 입었던 옷으로 구성은 조복과 유사하다. 그러나 제관에는 금칠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가장 겉옷인 의(衣)의 색상이 검은 색인 것, 방심곡령을 더한 것이 달랐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여자 장신구
예복을 입을 때에는 머리모양은 크고 풍성하게 보이도록 가체를 더하고, 큰 비녀와 떨잠 등을 꽂았다. 예복에 착용하는 비녀는 일상용보다 길이가 길고 장식 부위인 비녀머리가 크며 파란 장식을 많이 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말기 쪽머리가 일반화된 후에는 비녀와 함께 쪽에 꽂는 각종 뒤꽂이도 더욱 화려하게 발달하였다. 떨잠 또한 각종 보석과 떨새 장식을 달아 동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호화로운 의례용 장식품이었다. 이 밖에도 옷에는 노리개를 늘어뜨리고 가락지를 끼고 귀걸이를 걸기도 하였다. 이러한 장신구에는 지조와 절개, 부귀와 장수, 자손 번성을 기원하는 길상 문양으로 복을 비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노리개>

<노리개>


<옥비녀, 조선 19세기, 산호비녀, 조선 19세기>

<비녀, 조선 19세기>


<패물보, 노리개, 조선 19세기>


<귀걸이, 문자삼작노리개, 조선 19세기>

<머리꽂이, 조선 19세기>

<머리꽂이, 조선 19세기>


<놋쇠 머리꽂이, 조선 19세기>


<머리꽂이, 봉황 머리꽂이, 조선 19세기>

<첩지,조선 19세기>

남자 장신구
조선시대 사재부 남성들은 알맞은 크기로 상투를 틀어 고정시키는 동곳, 상투를 품위있게 가려주는 상투관, 신분을 나타내 주는 관자와 같은 장식품으로 멋을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머리장신구는 남성들이 관모를 써서 위엄있고 엄숙한 의례복식을 갖추는데 기본이 되었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부채집, 나침반 선추, 조선 19세기>

<상투관, 조선 19세기>

<동곳집, 동곳, 풍잠, 조선 19세기>

<관자, 조선 19세기>

 담인복식미술관
이화여자대학교 담인복식미술관은 1999년 5월 31일 본교 의류학과 장숙환 교수의 개인 소장품 5,000여 점을 기증받아 개관하였다. 기증품은 장숙환 교수의 어머니 담인 장부덕(1908~1967)님의 유품이 기초가 되었고 이후 장교수에 의해 40여년 동안 수집된 것으로 그 모친의 뜻을 기리고자 ‘담인복식미술관’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기증품은 조선시대의 남녀의 장신구가 주를 이루며 이밖에 의복.수예품.목공소품.가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유물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 계층에서 사용되었던 것이 대부분으로 그 당시 상류 사회의 세련되고 우아한 미의식이 배어 있어 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출처>
1. 이화여대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