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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고구려실] 고구려의 무덤과 강서대묘 사신도

만주일대 고대국가였던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는 주변지역을 장악하면서 삼국가운데 가장 먼저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고구려는 환인성 오녀산성에서 출발하였으며, 압록강 중류지역 지안에 위치한 국내성을 근거지로 크게 강성해 졌다. 이후 대동강 일대에 낙랑군을 몰아내고 한강유역까지 진출하면서 남북조시대 중국에 맞서는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등장하였다. 고구려 유적지는 압록강 일대 요령성 환인현과 길림성 집안시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평양성 일대에도 강서대묘를 비롯하여 다양한 벽화가 그려진 고분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말탄 사람이 그려진 벽화편, 삼국시대(고구려), 5세기, 평남 남포 쌍영총, 복제품,

남포 쌍영총에 출토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고구려 벽화 실물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벽화편이다. 말을 타고 있는 고구려 무사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림의 표현 수법이 상당히 세밀하면서도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구려 복식 및 무기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는 그림이다.

말탄사람이 그려진 벽화편
1913년 평안남도 남포시의 쌍영총을 조사할 때 수습된 벽화조각으로 널길벽 인물 행렬도의 일부다.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모습에서 당시 고구려인의 옷치장과 말갖춤 등을 엿볼 수 있다. 이 인물은 ‘절풍’이라 불리는 고구려 특유의 모자에 새 깃 두개를 꽂아 장식한 ‘조우관’을 쓰고 있다. 재갈과 고삐를 이용해 달리는 말을 부리며, 말 위에서 몸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장과 발걸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말띠드리개나 말띠꾸미개 등으로 말을 장시하고 허리에는 화살통을 차고 있다. 고구려 무덤 벽화 사냥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모습을 통해 활쏘기에 능했던 고구려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반원막새, 삼국시대(고구려), 5~6세기, 평양지역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고구려), 5~6세기, 짐승얼굴무늬 수막새, 삼국시대(고구려), 5~6세기)

글자가 새겨진 벽돌,

지린성 지안의 태왕릉과 천추총에서 출토된 벽돌이다. 이 무덤들은 대형 계단식돌무지무덤으로, 무덤 위쪽에 기와를 이은 건물을 세웠거나, 무덤을 지키는 사람과 관련된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벽돌은 무너진 돌무지 속에 기와와 함께 섞여 있었으며, 한쪽 면에는 무덤이 오래도록 보존되기를 기원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맞새김무늬 꾸미개, 금동, 삼국시대(고구려) 5~6세기, 평양 진파리 무덤, 복제.

평양 진파리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으로 만든 꾸미개로 여기에 표현된 맞새김 무늬는 생동감이 넘치는 고구려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를 이 금동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봉황모양 꾸미개, 금동, 삼국시대(고구려) 5~6세기, 평북 운산 용호동 무덤

고구려의 금동관
고구려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다른 모양의 관을 착용하였다. 고구려의 관인은 절풍이나 소골이라 불리는 고깔모양의 관에 새 깃 2개를 꽂고 금테나 은테를 섞어 둘렀다. 지안 일대에서 출토된 고구려의 금동관 꾸미개는 두껍게 도금된 상태로 대개가 세움 장식 가장 자리를 촘촘히 오려낸 다음 하나씩 꼬아 새의 깃털처럼 표현하고 세잎무늬 등을 맞새김해 장식하였다. 개마총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쓰고 있는 관 꾸미개의 형태가 이와 비슷하다. 이런 고구려의 관과 꾸미개는 금.은제 귀걸이와 허리띠장식,금동신발 등과 함께 고대국가 지배계층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요녕성과 길림성 일대 고구려 유적
중국 요녕성 환인현과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도성과 무덤, 비석 등이 고구려의 대표적 문화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구려의 첫번째 도읍인 환인의 오녀산성과 두번째 도성인 집안의 국내성, 환도산성 등이 이에 포함되었다. 또한, 왕릉이나 귀족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집안 일대의 돌무지무덤과 돌방 벽화무덤 39기도 광개토대왕릉비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장군총과 태왕릉을 비롯해 각저총, 무용총, 모두루총, 오회분, 장천 1호 무덤 등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무덤들이다. <출처:중앙박물관>

평양 일대의 고구려 유적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였던 평양 일대에는 여러 성격의 고구려 유적들이 분포하는데, 그 중 평양시와 남포시, 황해남도 안악 일대에 분포하는 고구려 무덤 63기가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동명왕릉과 진파리 무덤군 15기, 호남리 사신총과 주변 무덤 34기, 덕화리 무덤 3기, 강서 삼묘, 덕흥리 무덤, 약수리 무덤, 수산리 무덤, 용강대총, 쌍영총, 안악 무덤 3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 중에서도 벽화무덤은 정교하게 축조된 돌방 내부에 다양한 생활모습과 사상을 세련된 필치로 그려내어 고구려 문화의 정수를 보여 주는 대표적 유적이라 할 만하다. <출처: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1층 고고관에서는 고구려 벽화인 강서대묘 사신도를 전시하고 있다. 이 사신도는 1930년대에 벽화를 보고 모사한 그림으로 실제에 가까운 모습이다. 강서대묘는 북한 평안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고구려 고분으로 1900년대 초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내부는 대형 화강암 판석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널방 벽체와 천정으로 이루저여 있으며 특별한 장식이 없이 사방이 벽화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기운생동하는 사신도와 유려하고 다채롭게 표현된 천장 그림들은 고구려 무덤벽화의 절정기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북벽의 현무가 연출하는 긴장감 있는 화면 구성과 회화적 완성도는 조사보고 당시부터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으며,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벽화를 모사했다고 하며,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벽화도 이 당시에 모사한 그림 중에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중앙박물관에서 공식으로 모사한 그림으로 생각되며 그 수준 또한 상당히 높아 보인다.

고구려 무덤 벽화 모사도,

강서대묘에서 발견된 벽화를 1930년대에 모사한 그림이다.

서쪽 천장 고임, 널방투시도.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의 영향을 받은 중국의 석실고분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청룡, 강서대묘, 6세기말, 남포시 강서구역, 복제.

흔히 좌청룡이하고 하는 동쪽과 봄을 상징하는 상스러운 동물로 출입문인 남쪽문을 향하여 불을 뿜고 있는 모습이다. 백호와 함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대표적 상징으로 지금까지도 풍수에서 좌청룡.우백호의 기운의 지세를 추구하고 있다.

청룡
널방 동벽 청룡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청룡은 널방 입구인 남쪽을 향해 왼쪽 앞발을 크게 내저으며 하강하는 모습이다. 커다란 S자 모양의 가느다란 목과 굵은 몸통, 계단꼴을 이루면서도 유연하게 뻗어 나간 꼬리, 적절하게 내딛고 뒤로 뻗은 네 다리가 서로 어우러져 청룡의 자태를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있게 만들어준다. 화려하면서도 치밀한 몸체의 묘사와 채식이 돋보인다. 청룡은 사신 중 동쪽의 수호자이며 일찍이 백호와 함께 벽사의 기운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청룡과 백화에 대한 옛 사람들의 인식은 중국 신석기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시신 좌우의 용과 호랑이 형상 조개껍질 더미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이들이 약 6천년 전부터 죽은 이의 삶터를 지키는 존재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청룡의 머리 뒤쪽에 대형 철못의 흔적으로 보이는 검은색 방형 점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철녹을 표현한 듯한 붉은 선이 있다. 이러한 검은 점이 널방 네벽의 비슷한 위치에서 확인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현무, 강서대묘, 6세기말, 남포시 강서구역, 복제.

강서대묘의 사신도를 비롯하여 고구려 벽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통털어서 가장 대표적인 벽화라 할 수 있다. 서방세계에서 사자가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동물투쟁도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으며, 서역과의 문화적 교류의 한단편으로도 많이 소개되는 벽화이다.  이 그림은 뱀이 거북을 감은 형상으로 두 동물의 투쟁모습을 생생하고 기운이 살아 넘치는 역동적인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강서대묘 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그림으로 고구려벽화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회화로서도 상당히 우수하고 잘 그려진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는 벽화이다.

현무
널방 북벽 현무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현무는 뱀이 거북을 감은 형상으로 거북이와 뱀이 마주 보면서 서쪽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다. 마주보는 위치에서 비스듬히 허공을 쳐다 보는 거북과 뱀의 크게 벌린 아가리에서는 불꽃같은 기운이 뿜어 나온다. 거북이 자아낸 운동감과 뱀이 이루어낸 탄력성이 잘 어우러져 역동적인 현무를 만들고 있다. 북방의 수호자인 현무는 주작과 함께 음양의 기운을 순조롭게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무의 개념은 중국 한나라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뱀과 거북이 한 몸을 이룬 전형적인 모습은 한나라 때에 처음 등장하지만 이후에도 거북만으로 표현된 경우가 적지 않다. <출처:중앙박물관>

주작, 강서대묘, 6세기말, 남포시 강서구역, 1930년경 모사, 복제.

닭의 부리에 날개와 꼬리깃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는 동물로 중국의 봉황, 서양에서 말하는 불사조인 피닉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상서러운 동물이다.

주작
널방 남벽 주작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암수 주작은 널방 입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모습이다. 널방 입구 주변은 넝쿨무늬로 장식하였다. 부릅 뜬 눈, S자꼴을 이룬 목과 몸통, 원형에 가깝게 활짝 편 날개와 반원꼴로 크고 힘있게 말려 올라간 세 갈래 꼬리깃 등이 주작을 거세고 힘있는 존재로 보이게 한다. 두 주작 모두가 화려한 인동 앞에 싸인 연봉오리를 부리에 한 줄기씩 물고 있다. 주작의 다리 아래쪽에는 봉우리 여러개가 서로 연결되어 산맥을 이룬 산이 그려져 있다. 주작은 사신 중 남쪽을 수호하며 현무와 함께 음양의 조화를 관장하는 존재이다. 고구려 무덤벽화에서 주작은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두 날개를 활짝 편채 마주 서 있는 한 쌍으로 등장한다. 머리에 깃털관이 있고 부리는 닭의 모습이며 날개와 꼬리깃이 몸에 비해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벽화속에 등장하는 주작의 모습은 닭의 형상에 가깝게 그려진 예도 있지만 대체로 고대 중국에서 깃털 달린 동물 중 으뜸이라 칭했던 봉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백호, 강서대묘, 6세기말, 남포시 강서구역, 1930년경 모사, 복제.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호랑이의 모습과는 다르게 용이나 상서스러운 동물처럼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서쪽편 청룡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입구인 남쪽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백호
널방 서벽 백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서쪽을 관장하는 백호는 청룡과 짝을 이루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수호신으로 인식되어 왔다. 동벽의 청룡과 마찬가지로 남쪽 널방 입구를 향해 포효하며 내딛는 모습의 백호는 매우 환상적으로 표현되었다. 기본 자세와 태도는 맞은 편 청룡과 거의 같다. 다만 역S자꼴을 이루며 목에서 몸통으로 이어지는 선이 보다 가파르고 세밀한 세부 묘사를 생략한 몸통 표현, 상대적으로 가늘어 보이는 네 다리의 묘사 등이 백호 나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점이 다르다. 넓은 혀를 내민 백호에는 줄무늬의 호피무늬를 부분적으로 그려 넣었을 뿐, 붉은 색으로 엷게 채색한 몸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다. 앞발을 크게 내민 대각선 구도가 속도감과 운동감을 더해 주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고구려의 사신
청룡.백호.주작.현무로 이루어진 사신은 대표적인 상상 속 신수이다. 사신은 동서남북의 네 방향,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계절, 하늘 사방의 28별자리와 관련있는 존재이며 벽사와 음양조화를 뜻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본격적으로 사신이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한대부터인데 시기별.지역별로 인식과 표현기법에서 변화와 발전을 계속하였으며, 우라나라에서는 고구려 무덤벽화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사신은 해와 달, 별자리, 상서로운 동물, 연꽃 등과 함께 내세를 이루는 한 요소로 무덤칸 천장에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5세기까지는 표현과 배치가 정형화되지 않아 기이하고 어색한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고 쌍을 이뤄 나타나거나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점차 사신에 대한 인식이 체계화되면서 신령스러운 동물 특유의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해 나가게 된다. 그리하여 6세기 이후에는 벽화에서 그 비중이 점차 높아져 무덤칸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사실상 유일한 주제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로부터 단지 내세를 구성하는 하나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독자적 존재이면서 무덤의 수호자로 격상된 사신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강서대묘
강서대묘는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있다. 삼묘리에는 3개의 흙무지돌방무덤이 삼각형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는데, 제일 남쪽의 가장 큰 무덤이 강서대묘이다. 1900년대 초반부터 벽화무덤이라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져 외부인들의 무덤 안 출입이 계속되었으나 1912년에야 본격적인 내부 조사가 이루어졌다. 무덤의 방향은 남향이며 무덤칸은 지상에 축조되었다.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외방무덤으로, 잘 다듬어진 대형 화강암으로 무덤칸의 벽과 천장고임을 축조하였다. 대형 화강암 판석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널방 벽체가 서로 만나는 곳의 상부는 끝부분을 각이 지게 깎아 내어 처음부터 약간 좁혀진 상태로 천장을 고일 수 있게 하였다. 널방의 천장구조는 평행삼각고임이다. 무덤 안의 돌 벽면에 직접 벽화를 그렸다. 벽화의 중심 주제는 사신이다. 아무런 배경 장식이 없는 널방 벽면에 사신을 가득 차게 그려 넣었다. 특히 기운생동하는 사신도와 유려하고 다채롭게 표현된 천장 그림들은 고구려 무덤 벽화의 절정기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북벽의 현무가 연출하는 긴장감 있는 화면 구성과 회화적 완성도는 조사보고 당시부터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다. 그뿐 아니라 천장고임에는 연꽃, 비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기린, 봉황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상서로운 존재들, 넝쿨무늬, 산악 등을 그려 넣어 신선 사상과 불교적 내세를 표현하였다. 또한 천장석 중앙에는 왕의 표지로도 이해되는 황룡을 그려 넣었다. 이러한 벽화들에 대한 모사 작업이 1912년과 1930년 무렵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전형적인 외방무덤 구조, 사신을 중심 주제로 삼은 벽화구성, 최고조에 이른 사신묘사 기법 등으로 보아 무덤의 축조와 벽화 제작 시점은 6세기 말일 가능성이 높다. <출처:중앙박물관>

고구려의 무덤은 돌무지무덤과 훍무지무덤이 있다. 돌무지무덤은 돌을 깔고 주검을 안치한 후 다시 돌을 덮는 방식으로 압록강 중류 지안시 일대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흙무지무덤은 지하, 반지하, 지상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는 방식이다. 흙무지무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고구려 마지막 수도였던 강서대묘를 비롯하여 평양성 일대 고분들이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돌방에는 생활풍속, 장식무늬, 사신도 등 다양한 주제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화들이 남아 있어 당시 고구려사람들의 생활모습, 정신세계 등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중국 한대 석실고분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중국 산동성박물관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비슷한 한대 석실고분 벽화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백제 적석총

장군총을 비롯하여 초기 고구려 고분의 양식이었던 돌무지무덤 형식이 남아 있는

고구려 석실고분의 영향이 남아 있는 죽령 남쪽 영주 순흥읍내리벽화고분.

고구려 고분에서 볼 수 있는 벽화가 남아 있다.

중국 산동성박물관에는 한나라때 석실고분들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고분벽화를 비롯하여 석실고분형태 등에서 고구려 석실고분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고구려 석실고분이 당시 교류가 많았던 한나라와 북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산동성 지역에서 출토된 석실고분 석재들.

석실고분에 그려진 벽화들.

고구려 벽화와 비슷해 보인다.

석실고분 출입문.

고구려의 무덤
고구려 무덤은 돌무지무덤과 흙무지무덤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돌무지무덤은 압록강 유역에 집중되어 있는 고구려 전기 무덤 형식이다. 지상에 돌을 깔고 그 위에 주검을 안치한 후 다시 돌을 덮어 만들었으며, 무기단식에서 기단식, 계단식으로 변천하였다. 지안의 장군총, 태왕릉, 천추총 등은 고구려 돌무지무덤의 가장 발전된 단계를 보여 주는 예이다. 흙무지무덤은 지하, 반지하, 지상에 널길이 있는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형식으로 돌방의 수, 천장의 짜임, 널길의 위치 등에서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또한 고구려에서는 벽화를 그린 돌방무덤이 발전하였다. 벽화무덤은 고구려의 옛 도읍 일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생활풍속, 장식무늬, 사신도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