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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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릉] 왕릉을 모시다.
산릉 제례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들의 능에서 직접 올리는 제사를 말하며, 오례 중 길례(吉禮)에 해당한다. 왕릉에서의 제사는 망자의 기일, 사시(四時, 1월, 4월, 7월, 10월 초순) 등 절기상 중요한 날에 올려졌다. 왕릉에서의 제사는 국왕이 직접, 또는 세자가 국왕을 대리하여 행차하여 올리는 경우와 관리들이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국왕이 왕릉을 행차하는 일은 선대 왕들에 대한 예를 올림으로써 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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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 봉안용 회화, 진전의례
국왕의 초상화를 모신 진전(眞殿)은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비슷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조선후기 진전에는 전담 관원들을 배치하여 크고 작은 제향을 올렸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진전은 국왕이 직접 제향을 올리는 국가차원의 제향시설로 격이 높아 졌다. 전시에서는 진전의례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제기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구한말에 사용된 것으로 종묘 제기와는 약간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는데 은제 그릇이 많고 서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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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 봉안공간, 진전
진전(眞殿)은 국왕의 초상화를 모시는 공간으로, 사찰의 조사당(祖師堂), 일반 사대부 가문의 사당인 영당(影堂)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진전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고려태조와 선대 왕 4대의 모신 경령전을 도성내 두었으며 역대 국왕들을 위해 세워진 원찰에 국왕과 가족의 초상화를 모시는 진전을 두었다고 한다. 조선은 개국 초기에 전조의 수도였던 경주, 개성, 평양과 이씨 왕조의 본향이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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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또 한분의 왕, 어진
어진(御眞)은 국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로 국가적으로 소중하게 다루어졌다. 어진을 제작할 때는 도감을 설치하거나 담당관리를 임명하여 전체적인 일을 주관하도록 했으며,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나 궁중화원들이 어진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어진은 당대 미술 중 인물화를 대표하는 걸작이라할 수 있으며, 선원전이나 영희전 같은 진전에 모셔져 특별히 관리되었다. 하지만 전쟁이나 화재 등을 피하지 못하고 실제로 남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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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과 진전의 역사
2015년 겨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열렸다.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가 가지는 상징성, 어진 제작과정, 어진 제작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화원 및 문인화가, 어진을 모셨던 다양한 진전들, 어진과 관련된 의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가 가지는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전시회였다. 어진(御眞)은 왕의 초상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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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남산의 힘] 돌아온 남산
1990년대 이후 남산은 일제강점기와 개발독재시대의 어두운면을 벗고 옛모습을 되찾기 시작한다. 정권을 수호하던 안기부와 수방사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였으며, 개발독재시대에 세워진 남산의 경관을 막고 있던 외인아파트의 철거는 이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0년대 이후 남산은 점차 원래의 기능이었던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복구되고 있으며,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하게 된다. 시민의 품으로: ‘남산 제모습 가꾸기’ 남산은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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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남산의 힘] 유신의 방패
남산에 개발독재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시설들과 함께 정권을 수호하기 위한 군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와 권위주의 시대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가 자리잡으면서 일반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주었다. 원래 남산북쪽에는 조선시대에도 군사시설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헌병대와 총독부가 설치되었는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도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남산은 급속히 성장하는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측면과 함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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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남산의 힘] 개발독재시대 남산
1960년 5.16쿠데타 이후 남산은 개발독재시대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남산 일대 성곽 주변에는 민간인이 거주하지 않은 공간이 많았던 까닭에 이 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반공교육을 상징하는 자유센터, 어린이회관, 국립극장 등 이념교육을 위한 시설들과 정권을 수호하는 수방사, 중앙정보부 등이 자리잡게 되었으며, 개발시대 편의 시설들인 재벌기업들의 호텔, 외국인들을 위한 외인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남산의 자연경관은 크게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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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남산의 힘] 해방 직후 남산
해방 이후 남산에 있던 일제의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조선신궁을 비롯한 다양한 상징물들은 자연스럽게 철거되었다. 일제의 식민통치 상징물들을 제외한 남산 일대의 다양한 시설들은 적산으로 민간에 적산으로 불하되었으며, 남산 일대에는 해방촌을 비롯하여 월남민들이 터를 잡게 되었다. 서울 시민의 휴식공간이었던 남산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방 이후 이념대립의 공간이 되었다가 이승만 독재정권을 상징하는 이승만 동상을 비롯하여 여러 시설들이 자리잡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