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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남산의 힘] 일제강점기 남산
일제강점기 남산은 통감부를 중심으로 남산 일대에 형성되었던 일본인 거류지에 살았던 일본인들을 위한 공원으로 전락하였다. 일제는 남산에 한양공원, 왜성대공원, 장충단 공원을 설치하였다. 구한말 일본 거류민들을 위한 신사인 남산대신궁을 설치한 이래 노기신사, 경성호국 신사 등을 설치했으며, 1925년에는 남산 중턱 전망 좋은 곳에 메이지 일왕을 모시는 거대한 조선신궁을 건설하였다. 또한 구한말 고종이 을미사변 때 순국한 이를 기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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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특별전, 남산의 힘] 식민통치의 현장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의 휴식공간이었던 남산은 구한말 일본의 침략과 함께 침탈의 현장이 일본은 한양의 내사산으로 백성이 출입과 개발이 제한되었던 남산 일대에 핵심 통치기구인 통감부와 총독부를 비롯하여 각종 기관과 일본거류민들을 위한 주거지, 상업시설 등을 배치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조선신궁, 신사, 이등박물을 위한 사찰인 박문사 등을 설치하였다. 해방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많은 시설들은 철거되어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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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남산의 힘] 목멱, 한양의 안산
2015년 가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남산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남산은 서울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나즈막한 동산으로 서울시민들에게는 생활속에 함께하는 친근한 산으로 애국가 구절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감싸고 있는 내사산(內四山) 중 남쪽을 상징하는 주작에 해당하는 산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통감부와 신사가 설치되기도 했으며, 해방 이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는 여러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도 했다. 특별전에서는 조선시대 남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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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신림동 청춘] 고시촌 너머 신림동
신림동은 관악산 기슭에 자리잡고 서울 외곽의 작은 촌락으로 의성김씨 집성촌이었던 곳이다. 해방이후 한국전쟁까지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은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다. 이후 산업화과정에서 도심에서 밀려난 빈민들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서울 외곽의 빈민촌 중 하나였다. 1970년대 서울대학교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고시생들이 꿈을 찾아 모여든 고시촌이자, 서울대학생들의 생활공간으로 청춘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지역이다. 2000년 이후 로스클 도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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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신림동 청춘] 고시촌
2015년 가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신림동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특별전시회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에 형성되었던 고시촌 문화, 서울대학교와 함께 했던 민주화운동, 도시빈민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판자집 등 여러 형태의 삶과 문화가 신림동이라는 공간에 담겨 있다. 특별전에서는 신림동이란 지역이 형성과 변천된 과정을 바탕으로 한국 특유의 고시문화를 조명해 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스쿨제도의 도입과 함께 바뀔 것으로 보이는 고시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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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불상
신라가 불교를 받아 들인 이후 많은 사찰들이 세워졌으며, 사찰에는 사리를 모신 불탑과 함께 부처를 표현한 불상을 모신 금당이 세웠졌다. 신라의 대표적인 불상으로는 삼국시대 황룡사 금당에 모셔진 신라삼보 중 하나였던 장륜존상을 들 수 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하는 대표적인 불상으로는 2점이 남아 있는 석가모니가가 고민하는 모습을 표현한 반가사유상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석굴암에 모셔진 본존불을 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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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불탑과 사리갖춤
불교에서의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이며, 부처가 깃든 성스러운 곳으로 예배와 수행의 대상이다. 탑을 세우는 것은 부처의 진리를 널리 세상에 보이는 과정이기에 불교의 융성과 함께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져 불교미술 조형품의 백미로 자리잡았다. 특히, 통일신라 때 조성된 많은 석탑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 조각수법과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발굴당시 사천왕사 서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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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왕경인의 생활
신라가 불교를 받아 들인 이후 조성된 불국사, 석굴암 등을 비롯하여 많은 사찰들에서 그들의 뛰어난 예술 감각과 경제력 등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삼보 중 장륙존상과 구층목탑을 보유했던 황룡사는 신라 제일의 사찰로 여겨졌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린 황룡사에 대한 발굴.조사가 70년대 이후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사찰의 규모와 신라인의 종교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절터의 규모와 가람배치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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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신라의 왕경
신라의 왕경인 경주는 원래 신라6부가 자리하던 곳으로, 대경(大京)이라고 불리었다. 오늘날 경주 도심의 지형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남쪽에는 남천(南川), 북쪽에는 북천(北川, 알천), 서쪽에는 형산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토함산을 중심을 산맥이 가로막혀 있는 방어에 용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신라 왕경은 6세기 초반 바둑판 형태의 도로망 구축을 통한 도시계획을 시작하여, 8세기 경에는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왕경에는 금성(金城), 월성(月城)과 같은 성(城)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