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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박물관

  • [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신라인과 황금

    신라는 <일본서기>>에 “금은의 나라”로 표현될 정도로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다. 신라 마립간 시기(5~6세기)에 조성된 경주 도심의 고분들에서는 금관 외에도 금귀걸이, 금제드리개, 금반지, 금팔찌 등 다양한 장신구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무덤에 묻을 껴묻거리로 제작된 것도 있겠지만, 무덤의 주인들이 생전에 실제 사용했던 것도 상당히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장신구들은 제작수법이 상당히 정교하며 디자인이나 조형미 등은 오늘날 현대적인 감각의…

  • [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신라 황금문화의 발견

    2015년 여름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이라는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신라 천년을 대표하는 마립간시대(5~6세기)에 고분들에서 출토된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금속유물들과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 전성기 화려한 불교미술을 보여주는 걸작품들로 전시를 구성했다. 신라의 황금문화는 북방유목민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보이는 5~6세기 약 150여년간 화려하게 꽃피웠다. 마립간시대에 조성된 경주도심 신라 지배층의 무덤에서는 금관을 비롯하여 금귀걸이, 금목걸이같은 금은제 장신구와 화려한 유리제품 등이…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 백탑파이야기] 19세기 이후 백탑파 행로

    정조와 함께 조선후기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실학자들에게 정조의 죽음은 큰 영향을 미쳤다.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규장각은 그 기능이 크게 축소되었으며, 실학자들 또한 중심부에서 크게 멀어졌다. 노론세력에 의한 세도정치가 이어졌던 19세기에 북학은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이덕무의 손자 이규경, 추사 김정희나 최한기 등에 의해 명맥을 이어왔으며, 개화사상에 영향을 주기는 했으나 큰 학문적 성과나 세력화를 이루지는 못하고 20세기를 맞이하게 된다.…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 백탑파이야기] 연행(燕行),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연행(燕行)은 조선후기 청나라 보낸 사신단의 일정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시대 명과 청은 공식적으로 해외무역을 금지하고 사신단을 통한 조공무역만을 허용했기때문에 연행은 일본을 다녀온 조선통신사와 함께 조선이 세계와 접할 수 있었던 교류의 창구였다. 연행은 청나라가 심양을 도읍으로 삼을때부터 시작하여 동지사(冬至使)라 하여 연1회씩 정기적으로 시행되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북경까지 오가는데는 두달이 넘게 걸렸고 북경에서의 체류기간을 포함하면 반년 정도가 소요되는 험한…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백탑파이야기] 백탑파 사람들

    백탑파는 오늘날 원각사지구층석탑이 있는 종로 탑골공원 주변에서 살았던 정조대 북학파 실학자를을 일컫는다. 대체로 서울.경기 지역 출신으로 당시 주류였던 노론 집안에서 성장했으나 청나라를 인정하고 발달된 문화를 적극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는 등 개방적인 면모를 보였다. 백탑파에는 노론 명문가 출신인 홍대용, 박지원을 비롯하여 서얼 출신이었던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학문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인물들로 실제로 당대에도…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 백탑파이야기] 탑골에서 부는 바람

    실학은 17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대두된 현실개혁적인 조선시대 유학의 학풍을 말한다. 당시 청나라의 고증학과 더불어 실제적인 사물에서 진리를 찾아낸다는 뜻에 그 근원을 두고 양국에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면이 있다. 청대의 고증학은 경서의 해석에 치중한데 반해 조선의 실학은 서구문물의 영향과 함께 농업에서 부터 사회전반의 개혁을 추구한 학문으로 그 세부적인 내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프라하] 근대 방어시설

    프라하는 17세기초 당시 유럽의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는 30년 전쟁의 진원지로 인구의 1/3이 감소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30년 전쟁 기간 동안 중세에 쌓은 성곽들은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새로운 신무기에 대포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강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이탈리식 축성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이후에 전쟁에서 성곽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19세기에는 황제의 요새 기능 포기 명령과 도심의…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프라하] 초기의 방어시설, 성채

    9세기 말 체코인들이 보헤미아 왕국을 세운 이래로 프라하는 새로운 국가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이때 체코공작들이 거주하는 프라하 성이 지어졌으며, 블라타강 건너편에는 비셰흐라드라는 성채가 만들어졌다. 이때의 성곽은 나무와 흙으로 성벽을 쌓은 토성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이후 탑이나 망루 등이 세워지고 성곽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대체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고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서 성벽은 점차 도시의…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프라하] 유럽 중앙의 요새, 천연의 수도 체코 프라하

    2014년 겨울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프라하-유럽 중앙의 요새, 천연의 수도 체코 프라하”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열렸다. 서울역사박물관과 프라하시립박물관이 협력하여 준비한 특별전은 두 도시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유서깊은 성곽도시라는 관점에서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중세 동유럽을 대표하는 큰 도시인 프라하의 오랜 역사와 발전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프라하(Praha)는 체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