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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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보물), 호남을 대표하는 관아 누각
전북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광한루(廣寒樓, 보물)이다. 남원도호부 관아에서 공식적인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에 경치가 좋은 곳에 세운 누각이다. 조선 세종 때 황희가 처음 세웠으며 현재의 건물은 인조 4년(1626)에 고쳐 지었으며,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웠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4칸으로 지방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각 중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이다. 소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광한루에 올라 멀리 그네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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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안의 광풍루(光風樓), 옛 안의현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각
경남 함양군 암의면 금천리 금호강변에 세워져 있는 2층 누각인 광풍루(光風樓)이다. 조선 초인 1421년에 선화루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진 여러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의현 관아에서 공식적인 연회나 회의를 위해서 세운 누각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비교적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연회 등을 목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내부는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사방이 뚫려 있다. 시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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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대도호부 관아(사적)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에 있는 강릉대도호부관아(사적)이다.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강릉지역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936년(고려 태조19)에 강릉을 동원경이라 칭하고 임영관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강릉은 조선초에는 대도호부였으며 각종 정치지적인 이유로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대도호부가 구한말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강릉은 영동지방에서 평야가 가장 넓은 곳으로 선사시대 이래로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고려 태조대에 임영관이 세워졌을 때 83칸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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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강릉도호부 객사 정문
강원도 강릉시 임릉로 옛 강릉도호부 관아에 남아 있는 임영관 삼문이다. 강릉 객사 정문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관아 건물 중에서 유래가 오래되었고 건축 수법도 뛰어나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임영관 삼문은 앞면3칸, 옆면 2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고려시대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건축의 수법이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고, 그 수법도 뛰어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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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덕수궁) 양이재, 구한말 황족 교육을 전담한 수학원 건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회 뒷편에 남아 있는 덕수궁(경운궁) 전각 중 하나인 양이재이다. 구한말인 1905년 덕수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지은 건물로 앞면 7칸 규모의 비교적 큰 건물이다. 함희당이라는 부속건물과 행각들이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외형상 삼군부 총무당처럼 조선시대 한양의 관아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이곳은 황족과 귀족자제 교육을 전담하기 위해 궁궐 안에 지어진 건물이다. 건물의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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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정족산 사고(史庫)
정족산사고는 조선후기에 설치된 4곳의 외사고(外史庫) 중 하나이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지 않았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사고본을 인조대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보관하던 곳이다. 정족산 사고는 실록과 중요한 문서들을 보관하는 장서각과 왕실으로 족보인 선원보를 같이 보관하는 선원보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 누각으로 지어진 오대산사고나 전주사고와는 달리 정족산 사고는 창고 건물처럼 지어졌다. 전국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정족산사고 또한 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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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사고(全州史庫), 임진왜란 중 유일하게 화(禍)를 면했던 실록을 보관했던 곳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어진을 모신 전주 경기전(慶基殿) 동쪽에는 옛 전주사고 실록각(實錄閣)이 복원되어 있다. 최근에 복원한 건물로 문화재로서 가치는 별로 없지만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史庫)인 실록각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2층 누각건물이다. 전주사고를 보지못했을때는 꽤 큰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건물크기가 의외로 작고 아담한 규모이다. 2층 누각에 보관하여 습기 등으로 실록이 훼손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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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오대산 사고(史庫, 사적),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곳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계곡에 위치한 오대산 사고(史庫, 사적)이다. 이곳에 오대산 사고가 설치된 것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6년(선조39)이다. 처음에는 상원사가 선정되었으나 이후 월정사 부근에 사고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오대산 사고를 책임지는 관리로 참봉(參奉)을 두었으나 실제로는 월정사 주지가 사고 수호의 책임을 맡고 승병들을 배치하여 사고를 지켰다고 한다. 오대산 사고에는 실록각.선원각.별관 건물과 수호사찰인 영감사(靈鑑寺)가 있었으며, 참봉 2명과 군인6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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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부여현(扶餘縣) 관아, 옛 부여박물관에 남아 있는 객사와 동헌
부여(扶餘)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사비(泗比)라 불렸다. 백제가 멸망한 후 신라에 예속되면서 672년(문무왕12)에 부여도독부가 설치되었고, 751년(경덕왕10)에 부여현(扶餘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공주와 병합되었다가 조선초인 1413년(태종13)에 독립하여 종6폼 현감이 고을 수장인 부여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부여현은 옛 백제의 도읍이었던 사비성 일대만을 포함하며, 1914년 인근 홍산현, 임천군, 석성현, 공주군 일부가 편입되어 부여군이 되었다. 부여가 옛 백제의 도읍이었고, 주위에 넓은 평야가 있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