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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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국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障泥 天馬圖,국보)이다. 1973년 황남동고분 155호분에서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이 출토되면서 무덤의 이름도 천마총으로 바뀌첬다. 그림은 말의 안장 안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그림이다. 가운데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있으며, 테두리에는 여러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5~5세기 고구려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신라에서 그려진 그림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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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 서수형 명기(보물), 2011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도기 서수형 명기(陶器 瑞獸形 明器, 보물)이다. 경주 대릉원(大陵苑) 미추왕릉 부근 무덤에서 출토된 도기로 만든 명기(明器)이다. 거북모양의 몸을 하고 있으며, 머리와 꼬리는 용모양이다. 머리는 S자형으로 높이 들고 있고 목덜미, 등, 꼬레 뿔이 붙어 있다. 몸통은 비어있고 가슴에는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가, 있고 엉덩이에 밥그릇 모양의 주입구(注入口)가 있어 주전자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동,식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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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진흥왕릉(사적), 신라 24대 진흥왕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 김삼맥종)의 능이다. 진흥왕은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빼앗아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졌으며, 대가야을 정복하여 낙동강 유역을 확보하고 함경도까지 진출하여 신라 최대 영토을 차지하였다. 점령된 지역을 순시하면서 척경비을 세웠다.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게 했으며, 화랑도를 창설하고 경주에 황룡사를 창건했다. 삼국시대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다. <경주 진흥왕릉(사적)> 진흥왕이 왕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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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 고분군(사적), 태종무열왕릉 뒷편 4기의 무덤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서악동 고분군(사적)이다. 경주시 서쪽에 있는 선도산 남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 태종무열왕릉(사적) 뒷편에 나란히 있는 4기의 고분을 말한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무덤의 주인과 매장방식 등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봉분 밑둘레가 110 ~ 140 m 정도로 상당히 큰 규모이고 태종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태종무열왕과 관련된 왕족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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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태종무열왕릉비(국보), 당나라 양식을 받아들인 최초의 석비
경북 경주시 서악동 태종무열왕릉비(국보)이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져 있는 석비(石碑)이다.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받아들인 최초의 석비이다. 현재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으며 글자가 새겨진 조각이 조금 발굴되었다. 머릿돌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址碑)’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어 무덤과 석비의 주인이 확인되었다. 비몸은 없지만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의 장식은 아주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어 동양권에서도 걸작에 속하는 조각작품으로 평가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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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마왕릉(사적), 신라 6대 지마왕
경북 경주시 배동에 있는 신라 제6대 지마왕(祗摩王, 재위 112~134)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지마왕은 신라 5대 파사왕(婆賢王)의 아들로 태어나 23년 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능은 포석정에 200 m 떨어진 남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은 밑둘레 38 m로 크지 않은 규모로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덤의 입지조건이나 봉분의 형태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때 무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