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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경기도

  • [수원화성] 팔달문~서남각루, 팔달산 남쪽 능선으로 이어진 성벽

    수원화성(사적) 팔달문에서 정상부까지 성벽들로 이어져 있다.  기존 산성 축성방법에 따라 지은 석축성을 하고 있으며 성벽 위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정조때 쌓았지만 숙종대에 쌓은 한양도성에 비해 화강석의 크기가 작고 잘 다듬지는 않았다. 경사진 지형으로  방어에 용이하기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방어 시설을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정상부까지 치성(雉城)과 포루(砲樓)가 1곳씩 설치되어 있다. 치성은 성벽을 돌출시켜 방어에 용이하도로…

  • [수원 화성 ]팔달문(八達門, 보물), 수원화성 남문

    수원 화성 남문인 팔달문(八達門, 보물)이다. 수원화성 북문인 장안문(長安門), 한양도성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과 함께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성문이다. 잘다듬은 화강석 쌓아 홍예문을 만들었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려 놓았다. 문루 앞면 5칸의 우진작기붕을 하고 있다. 문루는 조총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판벽으로 막혀 있는데, 조선후기 성문 문루의 특징이다. 바깥쪽에는 구운벽돌로 쌓은 높이 약5m의 옹성(甕城)을 두여 2중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하고…

  • 경기도 통진도호부, 통진이청과 비석군

    통진(通津)은 한강하구에 위치하고 있던 작은 고을로 강화도를 건너는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오늘날 김포시의 서쪽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월곶면, 통진면, 하성면 등을 포함한다. 조선초기에는 종6품 현감이 고을 수령인 통진현(通津縣)이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숙종대에 강화도에 읍성과 돈대를 쌓고 행궁을 설치하였으며, 강화부는 종2품 유수부로 승격되었다. 이때 강화도 입구에 위치한 통진현에는 문수산성를 쌓으면서 종3품 도호부사가 고을수령인 통진도호부(通津都護府)로 승격되었다. <통진도호부 관아터>…

  • 김포향교, 옛 김포현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

    김포시 읍내 김포동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이다. 원래는 김포시청이 있는 김포 장릉 부근에 있었는데,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추존왕 원종)의 무덤이 장릉을 조성하면서 걸포동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건물들은 그 내력이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구한말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들은 1980년대에 원래의 건물을 크게 수리하였다.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쪽에, 제향공간인…

  • 광명 오리 이원익 종택, 충현서원터에 남아 있는 고택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오리 이원익 종택이다. 종택은 오리 이원익의 영정을 모셨던 정자인 관감당과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들은 조선시대 지어진 전통한옥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관감당은 전통 한옥의 사랑채나 정자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으나 살림집인 안채는 서울지역 개량한옥과 비슷하다. 살림집은 ‘ㄱ’자형의 안채와 ‘ㄱ’형의 문간채로 이루어졌으며, 중정형태의 안마당을 두고 있는 ‘ㅁ’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이라기…

  • [수원화성박물관] 장용영(壯勇營), 정조의 직할부대

    장용영(壯勇營)은 정조가 왕권강화를 위해 설치한 군영으로 국왕을 호위하는 직할부대라 할 수 있다. 정조는 집권초기 자신을 시해하려는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인 1785년 국왕호위를 전담할 장용위(壯勇衛)를 창설하였으며, 1793년에는 이를 군영(軍營)의 하나인 장용영으로 확대개편하였다. 장용은 크게 한양에 주둔하면서 궁궐을 호위하는 내영과 수원화성에 주둔하면서 외곽방어를 지원하는 외영으로 구성되었다. 조선후기 수도를 방어하는 중앙의 5군영은 조선후기에 형성된 무반가문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이들은 노론을…

  • [수원화성박물관] 정조의 화성행차

    조선후기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방문을 비롯해 재위기간 동안 총66회의 궁궐밖 행차를 했다. 또한 현릉원 자리에 있었던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화성을 축성하고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직할부대인 외장용을 설치하였다. 이는 정조의 개혁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당시 기득권세력이었던 노론세력을 견제하고 강력한 왕권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정조의 화성행차에는 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었는데, 당시 행렬에 동원되었던 6,000여명의…

  • [수원화성박물관] 화성의 축성과 도시의 건설

    수원화성(사적3호)은 정조가 융건릉이 있는 화성부근에 수원부 읍치를 옮기면서 대규모로 쌓은 성곽으로 한양도성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은 읍성이다. 성곽은 서쪽 팔달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낮은 구릉을 연결하여 쌓은 둘레 약5.7km의 읍성이다. 정조18년(1794년)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만에 완공하였다. 수원화성의 건설에는 당대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과 유형원 등이 참여했으며, 거중기를 비롯한 다양한 신기술이 적용되었다. 화성은 한양도성을 비롯한 조선시대 읍치에 축성된 대부분은…

  •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을 건설한 사람들

    수원 화성의 건설은 1789년(정조13) 수원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읍치를 화산에서 현재의 위치인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면서 시작하였다. 수원지역은 조선시대 육상교통로 중 가장 통행량이 많고 중요했던 제주대로의 핵심으로 삼남지방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한양을 올 때 반드서 거쳐야 했던 지역이다. 수원에 화성이 건설되기 전에는 수원부 읍치는 융건릉이 있는 화산일대였으나 정조가 자신의 개혁정치를 펼치고 노후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머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