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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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영당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사당인 영당(影堂)이다. 수졸당 이의잠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1636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앞쪽에는 제사를 위한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전형적인 사당건물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영당 앞에는 재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있으며 뒷편에는 이의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자가 있다. <경주 양동마을 영당> <영당 담장과 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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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경산서당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경산서당(景山書堂)이다. 이언적의 손자인 무첨담 이의윤을 배향할 목적으로 세워진 서당이다. 원래는 마을 안쪽 안계리에 있었는데 그곳에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종가인 무첨당에서 가까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경산서당이 세워진 19세기에는 서원이 난립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시기로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서당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서원 설립을 준비하기 위해 세워진 서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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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흥덕왕릉(사적), 신라 42대 흥덕왕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신라 42대 흥덕왕의 무덤인 흥덕왕릉(사적)이다. 왕릉은 봉분 지름 20.8m, 높이 9m의 원형봉토분이다. 봉분 주위에 둘레석을 두르고 있으며 바깥에는 난간석으로 둘러져 있다. 둘레석에는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새교 놓고 있다. 무덤 주위 모서리 4곳에는 돌사자를 배치하고 있으며 무덤 앞에는 문인석, 무인석, 화표석이 1쌍씩 세워져 있다. 앞쪽에는 비석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거북모양의 받침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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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옥산서원(사적), 회재 이언적을 모신 서원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옥산서원(玉山書院, 사적)이다. 조선중기 유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 ~ 1553년)을 기리기 위해 1592년(선조5)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으며 1573년 국왕으로부터 ‘옥산(玉山)’이라는 이름이 내려져 사액서원이 되었다. 옥산서원은 건축양식이 정형화된 후기의 서원들과는 달리 건물 배치나 건축양식에 있어서 자유로우면서도 형식적이고 절제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건물인 구인당(求仁堂)을 중심으로 한 강학공간이 앞쪽에, 위패를 모신 체인묘(體仁廟)를 중심으로 제향공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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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용강동고분(사적), 토용이 출토된 통일신라 돌방무덤
경북 경주시 용강동에 있는 통일신라 고분(사적)이다. 시신을 돌방에 안장하는 굴식돌방무덤이다. 1986년 발굴 당시 중요 유물은 도굴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나 토용, 청동십이지신상 등이 출토되었다. 문인상과 무인상, 여인상 등의 토용은 당나라 복식의 영향을 받은 당시 신라의 복식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무덤이 조성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발견된 유물들로 미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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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용강동 원지 유적(사적)
경주 북천 북쪽 황성동, 용강동 일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정원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연못터, 호악석축렬, 인공섬 2곳, 건물터 2곳, 다리시설, 도로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연못은 물이 개울처럼 흐르는 곡수지(曲水池)로 통일신라 정원 연못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연화문 수막새, 귀면와, 마루기와 등이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궁궐에 속한 정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주 용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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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성동 고분(사적), 통일신라 굴식돌방무덤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황성동 고분(사적)이다. 이 무덤은 인근 용강동 고분(사적)과 함께 고구려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통일신라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발굴,조사 결과 봉분과 호석 주변시설, 석실 내부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등을 통해 7세기 중반 처음 조성되었으며 9세기에 시신이 다시 매장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오래전에 도굴되어 내부에 있던 껴묻거리는 대부분 없어졌으나 일부 남아 있는 유물을 두 번에 걸쳐 장례가 이루어졌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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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성동동 전랑지(사적)
경북 경주시 성동동 일대에 남아 있는 넓은 건물터 유적인 성동동 전랑지(殿廊址, 사적 88호)이다. 일제강점기 경주 북천 제방공사 중 흙으로 쌓은 토단이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당시 약 2,000평 정도가 발굴되었는데 전당터 6곳, 장랑터 6곳, 문터 2곳, 담장터, 우물터, 배수구 등이 확인되었다. 기와, 납석으로 만든 그릇 등이 출토되었으나 중요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건물터의 성격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반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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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고루(사적), 고려시대에 쌓은 토루
경주에 있는 성벽으로 추정되는 유적인 남고루(南古壘)이다. 경주 대릉원 남쪽 입구에서 황오동 구분굴을 둘러싸면서 북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경주역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없어지고 북천 부근 성동동 전랑지(사적 88호) 부근 성동동 24번지 부근에만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1936년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밑넓이 9.5m, 외벽높이 3.5m, 내벽높이 2m로 확인되었다. <고려사> 등에 경주 읍성을 축성했다는 기록했다는 기록이 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