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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역사시대

  • 경주 낭산(사적), 선덕여왕릉이 있는 신라인이 신성시 여겼던 숲

    경주 낭산(사적)는 도심 동남쪽 보문동.구황동.배반동 일대에 누에고치모양처럼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는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5세기 실성왕대부터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선덕여왕과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과 관련이 많은 곳이다. 낭산에는 많은 유적지들이 있는데 북쪽편에는 신라 왕실의 기복신앙과 관련되어 있으며,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황복사가 있다. 낭산 남쪽 언덕에는 선덕여왕릉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칠처가람 중…

  • 경주 이견대(사적), 용이된 문무왕으로부터 만파식적을 얻은 곳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해안에 위치한 이견대(利見臺, 사적)이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위해 세운 감은사에서 600 m 정도 떨어진 해안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문무대왕릉인 대왕암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가 발견되었으나 이견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건물터가 발견된 곳에 1979년에 옛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새로 지은 것이라…

  •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사적), 정유재란때 의병을 일으킨 7인의 유적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섬진강변 석주관성에 있는 칠의사묘(사적)이다. 칠의사는 정유재란 때 호남지방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출신 의산 7명과 당시 구례 현감의 무덤이다. 정유재란 당시 진주에서 섬진강을 따라 호남지방으로 진격할때 구례 출신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켰으나 전사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이 구례 지역인사들과 함께 의병을 모으고, 화엄사 승병들의 지원을 받아 석주관에서 왜군과 접전을 벌였으며, 이듬해 왜군이…

  • 공주 고마나루(명승), 웅진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금강 나루터

    공주 무령왕령이 서쪽편 금강변에 위치한 고마나루(명승)이다.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고 표시되며, 공주의 옛 이름이다. 웅진기 백제때에는 왕성의 관문으로 중국, 일본, 고구려 등과의 문물을 고역하던 국제 항구로 이용되었으며, 백제가 멸망할 때 당나라 군대가 이곳에 주둔하며 웅진도독부가 설치되기도 했다. 고려 현종은 거란의 침입을 피해 이곳을 건너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에는 공산성 나루터가 호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하는 주교통로가 되었으며…

  • 공주 정지산유적(사적), 웅진 백제기 제사 유적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이 있는 송산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정지산 유적(사적)이다. 웅진기 백제의 제사시설로 알려져 있는 유적으로 왕성이었던 공산성 서쪽편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정지산 유적을 실제로 찾아가 보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건물터나 시설물 등은 없고 백제시대 제사시설이 있었다는 표지석만 홀로 서 있다. 이곳을 찾으면 실제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 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 일괄(보물), 서역인 얼굴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무인석 외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원성왕릉 입구에 세워진 석상 및 석주(보물)이다. 후대 왕릉 석물의 모범이 되는 석물들로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 사자상 4점, 석화표 1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무인상은 그 생김새가 서역인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어 통일신라시대 서역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유물로 여겨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처용가’에 등장하는 처용을 일컫는다고 한다. 문인상 또한 후대 왕릉의 문인상이 나약한…

  • 단양 신라적성비(국보), 진흥왕이 한강유역 장악을 기념하여 세운 비(碑)

    단양군 단성면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 적성비이다. 1978년에 땅속에 묻힌 채 발견되었다. 자연석 형태를 하고 있으며 윗부분은 잘려나가고 없지만 양 측면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뚜렷하게 남아있는데 그 내용을 거의 판독할 수 있다. 진흥왕대인 6세기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되는데 예서(隸書)에서 해서(楷書)로 옮겨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다. 비문의…

  • 부여 관북리유적(사적), 백제 사비성 왕궁터

    부여 부소산성 아래 옛 부여현 관아와 옛 부여박물관이 있었던 곳에 위치한 관북리유적(사적)이다. 이곳은 백제 왕궁터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과정을 통해 대형 전각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연못, 우물터, 기와로 만든 배수관 등이 확인되었다. 연못터에서는 백제시대의 기와 및 토기편, 목간, 짚신, 금동제귀걸이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백제의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진흙을 다져 포장한 도로와…

  • 충주고구려비(국보),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충주고구려비전시관에 있는 충주 고구려비(국보)이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비석이다. 원래부터 마을입구에 있었고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기때문에 민속신앙 의미를 갖는 선돌로 여겨졌는데, ‘예성문화연구회’라는 모임에서 답사차 이곳을 방문했다가 글자가 새겨진 것을 확인하고 학계에 알려 고구려비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비석에는 고구려 국호를 의미하는 ‘고려대왕(高麗大王)’를 비롯하여 고구려 관직이름과 광개토대왕비에 적힌 글자 등이 확인되면서 고구려비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