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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불교공예, 공양구와 밀교법구

불교공예는 부처의 장엄, 공양,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를 가리킨다. 불교공예는 그 쓰임새에 따라 범음구, 공양구, 장엄구, 밀교법구 등이 있다. 공양은 불(佛).법(法).승(僧)과 부모, 죽은자의 영혼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며, 공양구(供養具)는 공양을 올릴 때 사용되는 도구를 만한다. 공양물로는 향, 등(燈), 꽃, 음식 등이 있으며, 공양구로는 촛대, 향로, 정병 등이 있다. 공양구는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많이 만들어 사용되어 왔으며, 백제금동대향로(국보)를 비롯하여 뛰어난 걸작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고려시대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물가풍경무늬 정병(국보)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공양구>

불교공예 중 공양을 올리는데 사용하는 공양구이다. 공양구로는 향을 올리는 데 사용하는 향로와 향완, 밝은 빛을 올리는 데 사용하는 촛대와 화로 등이 있다.

물가풍경무늬 정병(국보).

물가풍경무늬

물가의 풍경이 은입사기법으로 그려져 있다고 해서 물가무늬정병이라고 불리는 정병이다. 이런 무늬를 그린 정병은 다양한 형태로 많이 만들어 경우가 많다고 하며, 아마도 중국 남조 도교의 영향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가풍경무늬 정병(고려 12세기, 국보)
0.5㎜ 굵기의 은실로 버드나무와 갈대, 오리 등 물가풍경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정병이다. 몸체의 앞, 뒤에는 버드나무를 중심으로 갈대가 솟은 섬과 오리, 기러기, 배를 타거나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은입사로 표현되었는데, 푸른 녹과 어우러져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정병(淨甁)은 부처에게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병으로, 승려가 지녀야 하는 18가지 필수품의 하나였다. 일찍이 통일신라 석굴암의 범천상에 보이며 고려시대에 유행하여 청동과 청자로 많이 제작되었다. 특히 정병 표면을 파고 은실을 끼워 넣는 입사기법을 사용하여 물가 풍경을 그림처럼 장식한 예가 많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걸이향로(고려, 경기 하남시 춘궁동 출토).

하남시 춘궁동 절터에서 출토된 향로이다. 걸이가 있는 향로로 아미타법회와 같은 특정한 불교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편적인 향로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옆쪽에서 본 모습.

항아리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뚜껑에 향이 나오는 구멍이 있다.

걸이향로는 타원형의 몸체와 반구형의 뚜껑, 구름 모양의 손잡이로 구성된다. 이 향로는 춘궁동 절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원주 법천사지와 청주 사뇌사지 등에서도 이러한 향로가 발견되었다. 걸이향로는 아미타법회와 같은 특정 불교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잔받침(고려, 경기 하남시 춘궁동 출토)

향로(고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향로의 형태를 하고 있다.

연꽃가지 모양 손잡이 향로.

고려초에 만들어진 향로로 중국 요나라의 영향을 받은 향로의 형태이다. 받침에 요나라 연호가 새겨져 있다.

연꽃가지 모양 손잡이 향로(고려 1077년)
받침은 연잎, 노신은 연꽃, 손잡이는 연꽃가지 모양으로 만든 향로이다. 연지형병향로는 요(遼)나라에서 가장 먼저 제작, 사용하였고, 고려에서는 11세기 후반경에 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향로의 받침에는 음각으로 “태강삼년(太康三年)”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077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향로(香爐)는 고대 인도지방에서는 고온다습하여 생긴 악취를 없애고 해충을 쫓기 위해 향을 사용하였다. 향을 공양하는 것을 최고의 대접으로 여겼으며 잡귀나 잡념을 제거한다고 하여 불교 의식과 여러 의례에 사용하였다. 한국에서는 향을 태우는 그릇인 향로를 삼국시대부터 사용하였다.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향로를 특별히 향완이라고 하며,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함평궁주방’이 새겨진 향완.

몸체에 새겨진 무늬

몸체에 범자를 비롯하여 연꽃과 포도무늬 등이 은입사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받침에 표현되어 무늬.

「함평궁주방」이 새겨진 향완(「咸平宮主房」銘靑銅銀入絲香垸, 고려13세기)
함평궁주는 고려 희종(재위1240~1211년)의 비(妃)로 1211년에 정식 왕비로 책봉되어 함평궁주로 봉해졌다. 이 향완은 함평궁주방에서 화엄경장(華嚴經藏)에 놓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고려시대 왕비가 발원한 유일한 작품이다. 이 향완의 몸체에는 옴마니파드의 범자를 비롯해 연꽃과 포도무늬 등이 은입사로 표현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향완(고려 1168년),

향완(香垸)은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향로로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다. 이 향완은 고려시대 향완의 형태를 이었으며, 표면에 홈을 파고 은선을 박아 넣은 은입사 기법으로 범자무늬와 연꽃무늬, 넝쿨무늬를 장식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촛대(고려).

촛대는 등(燈)과 같은 성격을 갖은 공양구로 밝은 빛을 공양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찰, 왕릉이나 탑, 승탑 앞에 세워진 석등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공양구(供養具)
공양은 불(佛).법(法).승(僧)과 부모, 죽은자의 영혼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석가모니가 6년의 고행에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다가 마을에서 우유죽을 공양받은 후,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표적인 공양물로는 향(香), 등(燈), 꽃(花), 과일(菓), 차(茶), 음식(味) 등이 있고, 공양구로는 향로와 촛대, 꽃병 등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공예 중 승려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상적인 용구로는 설법할 때 위엄과 예법을 세워는 상징으로 여의(如意), 가사띠 장식, 지팡이머리 장식 등이 있다. 또한 고려말 원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밀교(密敎)와 관련된 금강저, 금강령 같은 법구(法具)들도 있다.  금강저와 금강령은 라마교 영향을 받아서 사용되었던 밀교법구로 번뇌를 깨뜨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일반적인 불교의식구는 아니다.

금강저(靑銅金剛杵, 고려),

밀교와 관련된 대표적인 법구이다. 고대 인도에서 사용되었든 무기의 형태로 번뇌를 깨트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금강저(고려, 충북 청주시 미원면 금관리 출토)

금강저는 고대 인도의 무기에서 유래한 형태로 번뇌를 깨드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밀교법구이다. 제석천이 지닌 상징물이기도 하다. 고려 후기에 중국 원과 교류하면서 유입된 라마교의 영향으로 이와 같은 밀교법구가 유행하였다. 양 끝의 뾰족하게 돌출한 부분의 갯수에 따라 독고저, 삼고저, 오고저로 나뉜다. <출처:중앙박물관>

금강령(고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철제 은입사 여의(如意).

손오공의 여의봉과는 다른 모습으로 원래 여의의 모습이 이렇게 생겼던 것 같다.

손 모양을 본뜬 여의는 처음에는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마음대로 긁을 수 있다하여 여의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이후 불교의 법회에서 설법을 하거나 강론을 할때 강사가 지녀서 위엄과 예법을 바르게 세우는 상징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길상과 복덕의 의미로 장심품으로도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가사띠 장식(고려, 12세기)과 지팡이머리장식 (고려, 12~13세기).

석장은 승려의 지팡이로 원래 수행자가 산이나 들을 거닐 때 독사나 독충을 쫒는 도구였다. 화려한 석장은 지체 높은 승려의 위엄을 나타내기도 한다. 석장 장식의 맨 위에 탑 모양이 있고, 고리 안의 앞뒷면에 보살입상을 조각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공예(佛敎工藝)
불교공예는 불보살의 장엄과 공양 및 의식에 사용하는 도구들을 말한다. 석가모니의 삼의일반(三衣一鉢, 세가지 옷과 한 개의 발우)에서 시작되었고, 석가모니의 사리를 탑에 봉안하면서 발달하였다. 불교공예는 쓰임새에 따라 전각이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장엄구(莊嚴具), 사람을 모으거나 교화하는데 사용하는 범음구(梵音具), 부처님께 공양드리는데 사용하는 공양구(供養具), 밀교의식에 사용하는 밀교법구(密敎法具) 등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