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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박물관

  • [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조선백자] 조선왕실과 백자

    1. 조선왕실과 백자, 2.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 3. 지방의 백자, 4. 문인문화의 유행, 5. 백자의 제작, 6.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 7. 문양이 된 문자, 8.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백자는 분청사기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이다. 순수와 절제가 돋보이는 백자는 유교사회를 추구했던 조선시대 지배층인 사대부의 취향에 잘 맞아 떨어졌다. 조선전기에는 사대부 취향의 백자와 서민…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발굴과 복원

    경희궁은 1970년대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이후 그 터만 남았던 것을 발굴.조사를 거쳐 전각 일부를 복원하였다. 조선후기 많은 전각들이 있던 넓은 경희궁 권역에는 서울고 이전 이후 원래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도심에 있던 위치적인 장점때문에 많은 공공기관들이 들어설려고 했으며, 그 중 서울시교육청이 경희궁 서쪽 언덕에 이전해 왔으며,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하여 일부 공공기관이 자리잡게 되었다. 1980년대 발굴.조사 이후 경희궁은 정전인…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구한말 이후 터만 남은 경희궁지

    조선후기 국왕의 임시거처이자 왕실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서궐(西闕)로 불렸던 경희궁은 구한말 고종대 경복궁 중건과 함께 그 역할이 크게 축소되면서 궁궐로서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 밖에 없었다. 경복궁 중건과정에서 많은 전각들을 헐어 건축자재로 사용되었으며, 왕실가족이 생활하는 이궁(離宮)의 역할은 법궁이었던 동궐이 맡게 되면서 경희궁은 실질적인 용도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후 숭정전을 비롯하여 일부 전각만 남아 있는 넓은 공터만 남게…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경희궁의 공간 구성

    경희궁은 임진왜란 창덕궁이 공식적인 궁궐인 법궁(法宮)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국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이궁(離宮)으로 자리잡으면서 서궐(西闕)로 불렸다. 법궁으로 세워진 경복궁과는 달리 경희궁은 인왕산 자락 아래 경사진 지형에 맞추어 전각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였다. 정전인 숭전전이 인왕산 자락 아래 서쪽편에 치우쳐 있고, 정문인 흥화문은 종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워져 있었다. 궐내각사와 동궁전 흥화문 주변에 있었으며, 그 안쪽으로 국왕과 가족들이 거처하는 편전과…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경희궁의 역사적 의의

    경희궁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여러 궁궐들을 중건하면서 세워진 궁궐로 1623년(광해군15)에 완공하였다. 조선후기에 소실된 경복궁을 복원하지 않고 창덕궁을 법궁(法宮)으로 삼으면서 이궁(離宮)으로 동궐의 부족한 공간을 해소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숙종과 경종이 경희궁에서 태어났으며, 숙종.영조.순조 등이 승하하였고, 경종.정조.헌종이 즉위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고종대 경복궁을 중거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들을 헐어내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을 교육하기 위한 경성중학교(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섰으며,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 [중앙박물관 신안실] 용천요(龍泉窯, Longquan kiln), 아름다운 빛깔 명품 청자의 대명사

    1. 신안선 발굴,  2. 신안선에 실린 도자기들,  3. 화물주인과 선원들의 생활, 4. 차,꽃,향과 관련된 기물, 5. 청자의 고장, 용천요, 6. 청백자의 고장, 경덕진요, 7. 자주요, 길주요 등, 8. 복건성 가마들 용천요(龍泉窯 , Longquannyao)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용천현(龍泉縣) 일대에 있었던 도자기 생산지를 말한다. 영어로 청자색을 뜻하는 ‘셀라돈(Celadon)’이 바로 이 용천요의 청자에서 유래되었을 만큼, 용천요는 아름다운 청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중국 북송때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을…

  • [산동성박물관 하.상.주시대] 산동지방의 제후국들

    춘추.전국시대 산동반도에는 강태공의 제(齊)나라와 주공단의 노(魯)나라 외에 여러 제후들의 분봉받았던 작은 소국들이 많았다. 황제의 후손이 분붕받은 설(薛)나라, 주공단의 아들이 분봉받았던 등(滕)나라, 주무왕 동생이 분봉받았단 조(曹)나라 외 성(郕) ,(紀), 거(莒), 주(邾), 담(郯) 등 작은 여러 제후국들이 있다. 춘추.전국시대 각국의 도성이었던 산동지방 유적지에서 청동으로 만든 예기(禮器), 청동무기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1. 도량(陶量), 춘추시대, 산동성 쩌우청시(邹城市) 주(邾)나라…

  • [산동성박물관 하.상.주시대] 노나라, 공자의 고장

    노나라(魯)는 산동반도 태산(泰山) 남쪽 취푸시(曲阜)에 있었던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이다. 노나라는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의 아우 주공단에게 봉분된 지역으로 강태공에게 봉분된 제(齊)와 함께 동이(東夷)를 제압하는 역할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춘추시대 초기에는 강국으로 제, 송과 싸워 이기기도 했으나, 춘추시대 중기 이후 귀족세력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전국시대에는 국력이 크게 쇠퇴하여 전국칠웅에 포함되지 못했으며, 기원전 256년 초나라(楚)에 멸망하였다. 노나라 도성은 취푸(曲阜)이며, 공자가…

  • [산동성박물관 하.상.주시대] 제나라의 수도 임치(臨淄; Línzi)

    제(齊)나라 도성은 임치(臨淄; Línzi)로 산동성 쯔보시(淄博, Zībó)에 위치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도시들 중 가장 크고 경제력이 풍부했던 곳으로 인구는 약20만 정도였다고 전한다.  “國”자의 어원이 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대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성벽 둘레가 약 14km 정도였다. 도시는 귀족층들의 거주하는 도성안과 일반서민들이 거주하는 도성밖으로 구성되었으며, 유적 발굴.조사 결과 성벽과 배수시설 등 다양한 기반시설들이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