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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박물관

  • [고궁박물관특별전,”종묘”] 제향공간과 건축

    2014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종묘(宗廟), Jongmyo, The Royal Ancestral Shine” 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전시회에서는 조선시대 국가를 상징하는 종묘(宗廟)의 유.무형 문화유산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종요의 역사, 건축, 유교 제례 문화에 대해서 살펴볼 수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전시내용은 역대 국왕와 왕비의 위패를 모신 정전을 비롯한 종묘 건축의 특징과 의의, 종묘에 위패를 모시고 절차와 종묘 제례절차, 각종 제기, 종묘제례악 등…

  • [수원화성박물관] 장용영(壯勇營), 정조의 직할부대

    장용영(壯勇營)은 정조가 왕권강화를 위해 설치한 군영으로 국왕을 호위하는 직할부대라 할 수 있다. 정조는 집권초기 자신을 시해하려는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인 1785년 국왕호위를 전담할 장용위(壯勇衛)를 창설하였으며, 1793년에는 이를 군영(軍營)의 하나인 장용영으로 확대개편하였다. 장용은 크게 한양에 주둔하면서 궁궐을 호위하는 내영과 수원화성에 주둔하면서 외곽방어를 지원하는 외영으로 구성되었다. 조선후기 수도를 방어하는 중앙의 5군영은 조선후기에 형성된 무반가문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이들은 노론을…

  • [수원화성박물관] 정조의 화성행차

    조선후기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방문을 비롯해 재위기간 동안 총66회의 궁궐밖 행차를 했다. 또한 현릉원 자리에 있었던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화성을 축성하고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직할부대인 외장용을 설치하였다. 이는 정조의 개혁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당시 기득권세력이었던 노론세력을 견제하고 강력한 왕권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정조의 화성행차에는 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었는데, 당시 행렬에 동원되었던 6,000여명의…

  • [수원화성박물관] 화성의 축성과 도시의 건설

    수원화성(사적3호)은 정조가 융건릉이 있는 화성부근에 수원부 읍치를 옮기면서 대규모로 쌓은 성곽으로 한양도성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은 읍성이다. 성곽은 서쪽 팔달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낮은 구릉을 연결하여 쌓은 둘레 약5.7km의 읍성이다. 정조18년(1794년)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만에 완공하였다. 수원화성의 건설에는 당대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과 유형원 등이 참여했으며, 거중기를 비롯한 다양한 신기술이 적용되었다. 화성은 한양도성을 비롯한 조선시대 읍치에 축성된 대부분은…

  •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을 건설한 사람들

    수원 화성의 건설은 1789년(정조13) 수원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읍치를 화산에서 현재의 위치인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면서 시작하였다. 수원지역은 조선시대 육상교통로 중 가장 통행량이 많고 중요했던 제주대로의 핵심으로 삼남지방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한양을 올 때 반드서 거쳐야 했던 지역이다. 수원에 화성이 건설되기 전에는 수원부 읍치는 융건릉이 있는 화산일대였으나 정조가 자신의 개혁정치를 펼치고 노후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머물기…

  • [중앙박물관 조선실5] 대한제국과 근대

    중앙박물관 조선실의 제일 마지막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기존의 정치.사회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2012년 특별전과 비슷한 형태로 구한말 변혁기에 서양문화와의 접촉과 서양의 영향을 받은 대한제국 시기를 재조명하는 내용으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19세기말 서양열강세력들의 대리전이자 일본의 침략 야욕을 보여준 청.일전쟁과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조선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독립국임을…

  • [중앙박물관 조선실4] 탕평과 문화의 진흥

    18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휴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병자호란 이래로 송시열을 중심으로 계속되어온 당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영조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과 권위로 조금이나마 제압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심으로 안정화된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영.정조대를 대표하는 정책으로는 탕평책으로 대변되는 당쟁의 극복과 왕권의 확립, 균역법으로 대표되는 조세개혁을 통한…

  • [중앙박물관 조선실3] 새로운 질서의 모색

    조선중기 임진왜란으로 동아시아 각국에는 크나큰 변화가 발생했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중앙집권적인 동경중심의 막부정치가 시작되었고, 북방에서는 만주 여진족이 크게 성장하여 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허약함을 드러낸 국왕과 집권층에서는 중립외교를 추구한 광해군을 축출하고 명분론적이며 친명을 표방한 서인세력이 집권했다. 인조대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에 허망하게 굴복하고, 명나라 또한 농민혁명과 청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 정립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사회를…

  • [중앙박물관 조선실2] 사림의 성장과 대외관계

    조선전기 성종대부터 고려말 이색이 문인이었던 김종직을 중심으로 신진관료였던 사림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림은 대체로 조선을 건국한 주체세력이었던 신진사대부에 속하지만 조선초에 벼슬에 진출하지 않고 향리로서 지방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연산군대와 중종, 명종대에 걸쳐서 여러번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16세기에는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성장하여 조선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이끌었다. 중종대 조광조가 성리학을 조선에 맞게 변형시키고 이를 현실정지에 적용하는 도학정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