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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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부 총무당과 청헌당, 조선시대 최고 군사기구였던 삼군부 청사
삼군부 건물은 조선시대 중앙부처 관아 건물 중 하나로 정청인 총무당(總武堂), 그 좌우에 보조건물격인 청헌당(淸憲堂)과 덕의당(德義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한말인 고종때 지어진 삼군부 청사는 약 100년이 조금 넘은 건물로 건축문화재로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구인 의정부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관아로서 의정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 당시 관아건물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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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행궁지(사적), 국왕의 임시 거처인 양주행궁 터
북한산성내 동장대가 바라 보이는 상원봉 아래에는 조선시대 행궁터가 남아 있다. 북한산성은 조선시대 양주목 관할이었기때문에 양주행궁이라 한다. 조선시대 중요한 행궁이었던 강화행궁, 남한산성 광주행궁, 수원 화성행궁은 관아와 행궁을 겸하고 있지만, 양주행궁은 관아와는 별도로 북한산성내에 지어졌다. 양주행궁은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대에 지어졌는데, 행궁이 험한 산중에 위치하고 있었기때문에 실제로 사용한 적은 없고 숙종과 영조가 잠시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행궁은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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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부 관아, 화성행궁(사적) 봉수당과 장락당
화성행궁은 국왕이 국방을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던 행궁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이곳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참배할 때 머물던 곳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읍치였던 화산 주변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읍치에 읍치에 있던 관아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수원화성을 축성하게 된다. 화성행궁은 수원유수가 업무를 보는 관아건물이지만 그 규모가 562칸으로 궁궐의 절반 정도이다. 정조는 화성행궁을 크게 지은 것은 왕위를 순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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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한산성 행궁(사적), 광주부 관아에 설치된 국왕의 임시 거처
남한산성에 있는 옛 광주부 관아 건물이자 국왕이 임시로 머물수 있는 행궁이 설치된 사적 480호로 지정된 남한산성(南漢山城) 행궁(行宮)이다.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대에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할때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되었다. 여러곳에 남아 있는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 역할을 하는 좌전과 우실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행궁은 국왕의 거처로 정전과 편전에 해당하는 하궐과 국왕이 머무는 내전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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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선실5] 대한제국과 근대
중앙박물관 조선실의 제일 마지막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기존의 정치.사회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2012년 특별전과 비슷한 형태로 구한말 변혁기에 서양문화와의 접촉과 서양의 영향을 받은 대한제국 시기를 재조명하는 내용으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19세기말 서양열강세력들의 대리전이자 일본의 침략 야욕을 보여준 청.일전쟁과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조선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독립국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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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선실4] 탕평과 문화의 진흥
18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휴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병자호란 이래로 송시열을 중심으로 계속되어온 당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영조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과 권위로 조금이나마 제압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심으로 안정화된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영.정조대를 대표하는 정책으로는 탕평책으로 대변되는 당쟁의 극복과 왕권의 확립, 균역법으로 대표되는 조세개혁을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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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선실3] 새로운 질서의 모색
조선중기 임진왜란으로 동아시아 각국에는 크나큰 변화가 발생했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중앙집권적인 동경중심의 막부정치가 시작되었고, 북방에서는 만주 여진족이 크게 성장하여 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허약함을 드러낸 국왕과 집권층에서는 중립외교를 추구한 광해군을 축출하고 명분론적이며 친명을 표방한 서인세력이 집권했다. 인조대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에 허망하게 굴복하고, 명나라 또한 농민혁명과 청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 정립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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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용흥궁,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잠저
강화읍 관청리에 소재한 조선 25대 철종이 강화도 유배시절에 살았던 잠저(潛邸)인 강화 용흥궁이다. 용흥궁은 원래 초가였던 것을 철종이 즉위한지 4년이 되던해에 강화유수 정기세가 현재와 같은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관아가 있던 지역이라 좁은 골목안에 대문을 세우고 일반 민가처럼 사랑채, 안채, 문간채를 지었는데, 이를 별전, 내전, 외전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잠저는 인조, 철종, 고종처럼 정상적으로 왕세자를 거쳐서 왕위에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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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조선실2] 사림의 성장과 대외관계
조선전기 성종대부터 고려말 이색이 문인이었던 김종직을 중심으로 신진관료였던 사림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림은 대체로 조선을 건국한 주체세력이었던 신진사대부에 속하지만 조선초에 벼슬에 진출하지 않고 향리로서 지방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연산군대와 중종, 명종대에 걸쳐서 여러번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16세기에는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성장하여 조선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이끌었다. 중종대 조광조가 성리학을 조선에 맞게 변형시키고 이를 현실정지에 적용하는 도학정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