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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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보물) 일원, 조선왕실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거처했던 궁궐 전각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한 낙선재(보물) 일원은 1846년(헌종 12)는 창건된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와 취운정.한정당.상량정, 승화루, 삼삼와, 칠분서 등을 볼 수 있는데, 승화루 등 낙선재 뒷편에 있는 건물들은 실제로는 세자가 거처하던 동궁에 속한 건물들이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을 위해 지은 건물로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 건청궁처럼 국왕이나 왕비들이 궁궐에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사대부 저택처럼 꾸며놓은 처소이다. 낙선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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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국왕의 교육과 국왕이 짓고 쓴 글
조선시대 국왕은 많은 학문적교양을 수양해야 했고, 이를 위해 어려서부터 제왕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또한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했으며, 국왕의 하루 일정 중 대부분을 할애해야 했다. 조선시대는 세자의 교육을 서연(書筵)이라고 하며, 전담 관청인 세자시강원에서 주관하였다. 세자시강원 관원들은 정부에서 주요직책을 맡은 관리들이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담관원은 세조때 집현전을 혁파하면서 전담직인 녹관3명과 겸직 2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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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동궁, 세자 서연이 열렸던 성정각과 관물헌
궁궐에서 정전 동쪽에는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東宮)이, 서쪽에는 국왕을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관청들인 궐내각사가, 뒷편에는 국왕의 업무공간인 편전과 생활공간인 침전이 자리하고 있다. 창덕궁에서는 편전과 침전이 정전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궁은 편전인 희정당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동궐도 동궁영역에는 생활공간인 중희당을 중심으로 세자의 교육을 위해 서연(書筵)이 열렸던 성정각과 관물헌, 그리고 부속 건물과 행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동궁 동쪽으로는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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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기록문화
조선은 많은 서적을 발간하고 기록을 남기는 문화를 가졌는데, 그 중심에는 왕실이 있었다. 왕실을 대표하는 기록문화로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 등제된 ‘조선왕조실록’을 들 수 있다. 실록은 역대 국왕의 행적을 편년체로 기록한 문서로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실록이 편찬되었다. 실록 외에도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참조할 수 있도록 글과 그림으로 남겨 놓은 의궤, 역대왕의 업적을 정리하여 후대왕이 참조할 수 이도록 정리한 국조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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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조선의 국왕 상징물
경복궁 궐내각사 있었던 영역인 서남쪽 모퉁이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왕실의 제도와 역대국왕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왕실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박물관은 2층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하는데 첫번째 전시실은 국왕이 조선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조선시대 왕은 국왕을 상징하는 존재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중요한 존재였으며, 그들의 업적은 후손들에게 전달되어야 했다. 전시유물로는 조선국왕을 상징하는 궁궐의 어좌, 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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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편전, 국왕의 업무공간 선정전과 희정당
궁궐의 공간은 크게 관청들이 배치되는 외조, 왕이 정치를 하는 치조,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연조로 나누는데 남북 방향 일직선으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조선의 법궁으로 세워진 경복궁이 이런 법칙에 따라 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반면에 창덕궁은 태종때 상왕을 위한 이궁으로 세워진 궁궐로 자연지세에 순응하는 형태로 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있어 정문인 돈화문이 남서쪽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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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정전, 인정전(국보)과 조정
인정전는 창덕궁을 정전으로 조선 500년 동안 가장 오랜 기간동안 법전 역할을 했던 곳이다. 법전은 왕의 즉위식, 결혼식, 세자책봉식,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렀던 건물이다. 또한 인정전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길을 출발한 곳이었으며, 인조반정도 이곳에서 벌어지는 등 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 정전 영역> 인정전은 태종대에 처음 세워졌고, 임진왜란대에 소실된 것을 광해군대에 오늘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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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궐내각사, 국왕을 보필하던 직속 관청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최근에 복원한 관아 건물인 궐내각사이다. 궐내각사는 의사결정기구인 의정부, 집행기관인 육조와 달리 국왕을 보필하는 직속기관이다. 왕의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왕의 칙령과 교서를 작성하고 보하던 예문관, 국왕직속 학술기관인 규장각과 장서 발행을 주관하는 검서청, 왕의 건강을 관리하는 내의원 등이 있었고, 그 뒷편으로 역대 국왕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이 자리잡고 있다. 궐내각사는 창덕궁 정전 서쪽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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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탕평비, 영조가 붕당정치 폐해를 해소하고자 세웠던 비석
공자를 모신 서울 문묘(文廟)가 있는 성균관대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조선후기 영조가 세운 탕평비를 볼 수 있다. 탕평비는 1742년(영조18)에 자신의 집권한 이래 붕당정치의 폐해를 해소하고자 펼친 탕평책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기 세운 비석으로 관직 진출을 준비하는 새로운 인재들이 모여 있는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 유생들에게 붕당정치를 경계하도록 세웠다. <성균관 탕평비> 영조가 즉위했을 때에는 숙종대부터 이어져온 붕당정치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