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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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동향교, 교동도호부 중등교육기관
옛 교동도호부 읍치가 있던 강화 교동도 읍내리에 있는 교동향교(喬桐鄕校)이다. 고려시대 안향(安享)이 원나라에서 공자의 초상화를 가져와 모셨던 유서깊은 향교이다. 원래 한강이 보이는 화개산 북쪽 기슭에 있었는데 조선 영조때 읍치와 가까운 이곳으로 옮겼다. 강학공간을 앞에, 제향공간을 뒤에 둔 후묘전학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건물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과 동.서재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강화 교동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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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교동도호부 관아, 교동읍성과 삼도수군통어영
교동도호부(喬桐都護府)는 한강 입구 강화 교동도에 설치된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다. 교동도는 섬의 규모가 크지 않아 지금은 강화군에 속해 있지만 삼국시대때부터 한강유역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강화와는 행정구역이 설치되었다. 교동도는 개화산을 비롯하여 여러 섬으로 되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넓은 들판이 형성되면서 하나의 섬이 되었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고목근현이라 불렀으며 신라경덕왕때 교동현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조선후기 경기수영이 남양에서 이 곳으로 옮겨지면서 도호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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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용흥궁,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잠저
강화읍 관청리에 소재한 조선 25대 철종이 강화도 유배시절에 살았던 잠저(潛邸)인 강화 용흥궁이다. 용흥궁은 원래 초가였던 것을 철종이 즉위한지 4년이 되던해에 강화유수 정기세가 현재와 같은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관아가 있던 지역이라 좁은 골목안에 대문을 세우고 일반 민가처럼 사랑채, 안채, 문간채를 지었는데, 이를 별전, 내전, 외전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잠저는 인조, 철종, 고종처럼 정상적으로 왕세자를 거쳐서 왕위에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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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동아시아 고인돌을 대표하는 유적지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소재한 지석묘(사적)이다. 하점면 일대 40여기의 고인돌과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많은 고인돌을 대표하는 고인돌이다. 높이 2.6m, 덮개돌 길이 6.5m의 대형 고인돌로 탁자모양을 하고 있는 북방식 고인돌이다. 부근리 일대에서 무문토기조각과 간돌검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덮개돌, 받침돌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사체를 넣은 막았던 판석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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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 강화의 민속
강화역사박물관에는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속품을 전시하고 있다. 민속품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가구를 비롯하여 사랑방에서 바깥주인이 사용하던 문방구, 안방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생활용품들을 들 수 있다. 민속품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물건으로 오래세월 사용하는 동안 대부분 낡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많아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생활용품조차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민속품들은 19세말 또는 20세기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유물로서 큰 가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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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 개항기의 강화
병자호란 이후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조선 정부는 강화도를 책임자를 정2품 강화유수로 하고, 군사와 행정을 총괄하게 하였다. 또한 강화산성, 정족산성 등을 보강하고 해안에 5진7보53돈대를 설치하는 등 국방을 강화하였다. 또한 강화갯벌들을 간척하여 농토를 넓혀 식량자급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이러한 조선의 대비책과는 정반대로 구한말 조선의 위협은 해양세력으로부터 찾아왔으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조선은 서양함대에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강화행궁이 약탈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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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 조선시대의 강화
조선시대 강화도는 삼남지방과 평안도, 황해도에서 생산된 물자와 세금으로 걷어들인 곡식들이 서남해안 연안항로를 거쳐 한강으로 모이는 서울이 입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또한 지리적 장점과 비교적 넓은 농지가 있어 국가 비상시를 대비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대몽항쟁의 경험으로 병자호란 때 국왕이 피신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으나, 청나라의 치밀한 공략으로 강화도가 점령되기도 했다.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에는 행궁을 설치하고 방어시설로 강화산성과 5진7보53돈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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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 강화 바닷길과 고려시대 강화
강화도는 한강하구와 서해안 연안항로에 위치한 큰 섬이다.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고, 주변에 넓은 갯벌이 있어 외부의 공격에 방어하기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선사시대 이래로 사람이 거주해 왔다. 강화도는 역사적 사건에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시기가 고려시대 대몽항쟁기와 병자호란일 것이다. 고려가 몽골에 40여년 항쟁하는 동안 고려 국왕을 비롯하여 집권층은 강화도로 피신하여 대몽항쟁을 주도하였다. 대몽항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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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삼거리고인돌군, 유네스코문화유산
삼거리고인돌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유적이다. 강화도의 주산인 고려산 서쪽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약 10여기의 고인돌을 말한다. 남아 있는 고인돌은 대부분 쓰러져 있으나, 남아 있는 뚜껑돌과 굄돌이 원형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인돌의 형태는 굄돌과 판돌로 4면을 막고 뚜껑을 덮은 탁자식 고인돌이며, 뚜껑돌에는 성혈로 보이는 구멍이 여러개 패여 있는 것이 있다. 주변에는 채석장이 발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