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고분/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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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사적) 서봉총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경주 대릉원 129호 무덤인 서봉총(瑞鳳塚)이다. 일제는 1926년 발굴.조사를 하면서, 당시 방한했던 고고학에 조예가 깊었던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를 참관하였다. 고분의 이름도 스웨덴을 의미하는 서(瑞)자와 봉황대를 의미하는 봉(鳳)자를 합쳐서 서봉총이라 불렀다. 서봉총에는 금관을 비롯하여 각종 청동제 그릇과 금.은 장신구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봉분의 조성형식 또한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경주 대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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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사적) 호우총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인 호우총(壺杅塚)이다. 경주 대릉원(사적)에 있는 많은 무덤 중 140호분으로 ‘호우(壺杅)’라는 글씨가 돋을 새김되어 있는 청동그릇(보물)이 출토되어 호우총이라 불린다. 1946년 국립박물관이 해방 후 처음으로 은령총과 함께 발굴하였다. 전형적인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옆에 있던 은령총과 함께 쌍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당시에는 봉분은 없고 주택이 있었으며 현재는 주위보다 약 2 m 높은 대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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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오릉(사적), 신라 시조 박혁거세,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
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는 경주 오릉(五陵, 사적)이다. 신라 궁성이었던 월성 서남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능역에는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 있는데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과 박혁거세의 왕후 알영부인이 묻혔다고 전해진다.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 봉토분으로 실제로는 이런 형태의 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에 등장한 무덤의 형태이며, 후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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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헌안왕릉(사적), 신라 47대 헌안왕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 재위 857~861, 김의정)의 능이다. 헌안왕은 신무왕의 이복동생으로 조카인 문성왕의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올랐다. 호족세력이 세력을 키워나가던 시기 반란을 통해 집권했던 세력으로 신라 왕실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문성왕릉과 함께 진흥왕릉 비슷한 규모의 작은 봉분을 쌓아 왕릉을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능묘제도의 영향을 받아 석물과 십이지신상 등으로 장식했던 이전 왕릉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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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성왕릉(사적), 신라 46대 문성왕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46대 문성왕(文聖王, 재위 839~857, 김경응)의 능이다. 문성왕은 신무왕의 아들로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난을 평정하고 지방호족 세력을 견체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던 왕이다. 삼촌인 47대 헌안왕과 함께 신라 전성기를 마련한 진흥왕릉 능역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반란을 통해 민애왕을 몰아내고 집권했기 때문에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이곳에 능을 마련한 것으로 보있다. 반란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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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진지왕릉(사적), 신라 25대 진지왕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5대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 김사륜/김금륜)의 능이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올라 백제군을 격퇴하고 중국 남조 진(陳)과 외교관계를 맺었다.<삼국사기>에 따르면 집권 4년만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유사>에는 국정을 문란하게 운영하고 황음에 빠져 폐위되었다고 한다. 귀족세력간의 대립에서 폐위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르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태종무열왕의 할아버지이다. <경주 진지왕릉(사적)> 진지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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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진흥왕릉(사적), 신라 24대 진흥왕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 김삼맥종)의 능이다. 진흥왕은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빼앗아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졌으며, 대가야을 정복하여 낙동강 유역을 확보하고 함경도까지 진출하여 신라 최대 영토을 차지하였다. 점령된 지역을 순시하면서 척경비을 세웠다.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게 했으며, 화랑도를 창설하고 경주에 황룡사를 창건했다. 삼국시대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다. <경주 진흥왕릉(사적)> 진흥왕이 왕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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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통일신라 김인문과 김양의 무덤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김인문과 김양의 무덤이다. 태종무열왕릉(사적)과 서악동 고분군(사적)이 있는 경주 선도산 남쪽 능선 아래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앞쪽에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무덤이 뒷편에 통일신라 후기 대각간을 지낸 김양의 무덤이 있다.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형태로 봉분의 크기는 왕릉보다 약간 작은 규모이다. 통일신라 귀족의 무덤중에서 주인이 알려져 있는 많지 않은 무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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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 고분군(사적), 태종무열왕릉 뒷편 4기의 무덤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서악동 고분군(사적)이다. 경주시 서쪽에 있는 선도산 남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 태종무열왕릉(사적) 뒷편에 나란히 있는 4기의 고분을 말한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무덤의 주인과 매장방식 등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봉분 밑둘레가 110 ~ 140 m 정도로 상당히 큰 규모이고 태종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태종무열왕과 관련된 왕족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