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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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아 건물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이다.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강원감영 정당(正堂) 건물로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664년 경에 건립된 보인다. 현재 위치에 세워진 이래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지만 실물이 그대로 계승되어 왔으며 조선시대 감영 선화당 건물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보물)> 선화당은 앞면 7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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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심검당 및 고방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에 있는 심검당(尋劍堂)과 고방(庫房)이다. 심검당은 대광보전 앞 마당 동쪽편에 있는 ‘ㄷ’자 모양을 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후기 상류층이 살았던 살림집을 연상시킨다. 마당을 향하고 있는 본채는 앞면 5칸 규모이며 양쪽에 온돌방들이 있는 날개채가 달려 있다. 조선후기 정조 때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건물 형태로 볼 때 거의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 규모는 상당히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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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면천읍성, 옛 면천군 읍치
충남 당진군 면천면에 있는 면천읍성(沔川邑城)이다. 조선초 세종 때(1439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읍치에 쌓은 읍성이다. 성을 둘레는 약 1,200m 정도로 큰 돌을 다듬어 쌓았았는데 바깥쪽은 석축이고 내부는 흙으로 덮어 경사진 토축을 이루고 있다. 서쪽과 남동쪽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남쪽 성벽과 남문은 최근에 복원하였다. 성문은 4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남문과 옹성을 복원해 놓았다. 조선초 해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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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면천군 관아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옛 충청도 면천군(沔川郡) 관아터이다. 관아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이후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 허물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다. 2007년 옛 동헌 출입문인 풍락루를 복원했으며, 면천초등학교가 사용했던 객사터는 2016년 학교가 이전하면서 객사건물을 복원하였다. 읍치를 둘러싸고 있던 읍성 성벽과 객사터에 남아 있는 수령 1,100년의 면천 은행나무, 객사터 앞 오래된 낡은 주택들과 상점들이 읍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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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해미읍성(사적), 충청병영이 있었던 읍성
충남 서신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해미읍성(海美邑城, 사적)이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해안지역을 침입하는 왜구에 대응하기 위해 쌓은 읍성 중 하나이다. 조선 태종 때(1471년)에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옮기기 위해 성을 쌓기 시작하여 세종 때 (1421년)에 완공하였다. 조선후기 효종 때(1652년) 병영이 청주로 옮겨가지 전까지 충청지역 군사 거점이었다. 이후에도 무관인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어 인근지역 군사업무를 총괄했다. 1970년대 이후 관아 건물을 복원하는 등 유적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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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해미현 관아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사적)에 잏는 해미현(海美縣) 관아이다. 해미현은 1407년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쳐서 설치하였다. 이 지역은 충남 서해안 연안 해로를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중요한 요충지이다.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던 조선초에는 충청병영과 충청수영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이후 충청병영은 청주로, 충청수영은 보령으로 이전하였다. 해미현 수령은 총6품 현감으로 무관을 임명하여 영장토포사(營將討捕使)를 겸하게 하여 주변 고을의 군사적인 업무를 총괄하였다.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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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달항아리(국보), 2007-2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달항아리'(국보)이다. 조선후기 왕실의 도자기를 공급하던 관요인 사옹원 분원 백자제작소에서 만든 것이다. 높이 43.9 cm, 몸통지름 44cm 대형 백자 항아리로 유약과 태토의 상태가 우수하고, 입지름과 바닥지름이 비례가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약간 비틀어지고 변형된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조형미에 생동감을 주고 있다. <백자 달항아리(백자대호, 국보)> <옆에서 본 모습> <출처>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0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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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국보), 한글로 번역된 가장 오래된 필사본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국보)이다. 세조 때 왕사인 신미 등이 국왕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상원사를 중창하면서 지은 글이다. 세조가 이를 전해 듣고 쌀, 무명, 베, 철 등을 보내면서 쓴 글과 함께 월정사에서 보관해 왔다.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으로 되어 있는데, 신미 등이 쓴 글에는 수결이 있고, 세조가 보낸 글에는 수결과 도장이 찍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