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구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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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황토현 전적(사적)과 만석보 옛터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있는 황토현 전적(사적)와 이평면 하송리에 있는 만석보 옛터이다. 황토현 전적은 동학농민군이 1894년 관군을 크게 물리친 곳이다. 동학농민군은 고부관아를 점거한 후 백산으로 진출하였는데 전라감사가 보낸 관군과 이곳 황토현에서 대치하였는데 밤을 이용한 기습공격으로 관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 싸움은 동학농민운동은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당시 국내 및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적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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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이 그린 19세기를 대표하는 매화 그림(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홍백매도(보물)이다.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이었던 유숙(1827 ~1873년)이 그린 매화가 그려진 8첩 병풍이다. 화면전체에 가지를 펼친 매화를 섬세하면서도 힘찬 필치로 그렸다. 19세기에 유행한 매화그림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그가 그린 유일한 매화그림이다. <홍백매도(보물)> 19세기에 유행했던 매화그림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화원으로 시사모임 벽오동에서 활동했던 유숙의 대표작이다. <매화를 그린 부분> 고목에 활짝 핀 매화를 섬세하면서도 힘있는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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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화(보물)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보물). 구한말 최고의 어진화사 이한철이 그렸는데 다양한 복식을 하고 있는 5점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 초상화에 나타난 흥선대원군의 복식은 <흑단령포본>, <흑건청포본>, <와룡관학창의본>, <복건심의본>, <금관조복본>이 있다. 의관과 기물이 매우 화려하며 당대 최고의 화가가 그린 초상화답게 표현이 매우 뛰어난 걸작이다. 초상화와 함께 초상화를 보관했던 영덩함 등이 고스란히 전하고 있어 당시 초상화와 관련된 문화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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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척화비, 구한말 서양세력을 경계하고자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만옥정공원 내에 있는 척화비(斥和碑)이다. 구한말 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서양세력을 경계하고자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이다. 창녕읍내 다른 곳에 있던 것을 해방 이후 이곳으로 옮겨 왔다. 이 비석을 세운지 백년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전국에 남아 있는 척화비가 많지 않아 역사적 의미는 큰 비석이다. 척화비에는 ”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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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미술 속 도시] 20세기 새로운 매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대한제국은 외국의 문물과 제도를 적극 도입하였다. 사진은 새로운 시각매체로 각광을 받았으며 인쇄술의 발달로 신문과 잡지는 그림과 사진을 넣어 새로운 정보와 지식 전달 수단이 되었다. 당시 미술가들은 새로운 사진술을 배우고, 신문이나 잡지의 삽화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사신기술을 도입한 화가출신 지운영의 사진을 비롯하여 당시를 대표하는 사진들을 전시했다. <민영환 초상입체사진(1904년)과 입체경> 러시아에 다녀온 지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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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미술 속 도시] 새로운 도자기법의 등장
조선후기에는 중국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유럽까지 수출되었으며, 일본에서도 자체적으로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경향이 반영되어 중국과 일본에서 유행한 장식기법이나 문양들이 반영된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이런 도자기들은 궁궐뿐 아니라 양반계층이나 한양의 중인계층에도 인기를 끌게 되면서 상인들을 주도로 도자기를 만들에 공급하게 되었다. 반면에 상인들이 분원 관요의 운영에 관여하게 되면서 백자의 질은 급속히 떨어지게 되었고 구한말 이후 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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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미술 속 도시] 19세기 대표 화가 장승업, 조희룡, 유숙
19세기 한양의 중인들은 전분 분야에서 역량을 바탕으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고 새로운 문물에 대한 안목을 높혀 나갔다.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미를 강조했던 양반 계층과는 달리 대담하면서도 감각적이며 세련된 조형미를 과시합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조선 3대 화가로 불리는 장승업을 비롯하여 매화 그림을 잘 그렸던 조희룡, 도화서 화원이었던 유숙이 있다. 그중 조희룡과 유숙은 중인들의 시사 모임인 ‘벽오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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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독일에서 온 우리 미술품
19세기 한양은 상업도시로 급성장하면서 당시 부유층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종로의 시전에서는 서화를 파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한양을 찾은 서구인들은 이곳에서 조선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품을 찾게 되었고, 서구인들 선호했던 풍속화같은 미술품들이 제작되어 판매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한말 한국에서 활동했던 독일인들이 수집했던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당시 외국인 취향에 맞추어 제작된 미술품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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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김옥균 유허, 그가 묻힌 무덤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김옥균 유허이다. 이곳에는 그의 무덤과 그를 기리는 작은 사당이 세워져 있다. 그의 양자였던 김영진이 194년 아산군수로 재임할 때 일본 도쿄 청산외인무덤에 있었던 그의 무덤을 이곳으로 옮겨와 부인 유씨와 합장하였다. 무덤이 있는 곳은 옛 아산현 읍치 뒷편 작은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과 협력하여 개화운동을 했던 까닭에 일제강점기에 그의 양자가 아산군수를 지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