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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전] 카르나크 신전 – 제 3탑문 안뜰, 투트모스 1세 오벨리스크

대열주실을 지나 제3탑문과 제4탑문 사이에 있는 안뜰이다 .제3탑문을 나서면 정면으로 2개의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볼 수 있고 남쪽으로 멀리 여러 탑문들이 보인다. 안뜰은 두 개의 수직 행렬 축, 즉 주요 동서 축과 룩소르신전 방향으로 난 남북 축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 안뜰에는 여러개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중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가 남아 있다. 제4탑문은 이셋-수트로 알려진 아몬 성소의 입구이다.

<제3탑문 안뜰>
<제3탑문, 제4탑문>

제3탑문 안쪽으로 대열주실 중앙 통로의 기둥들과 나일강 서안 왕가의 계곡이 보인다.

<안뜰에서 본 제3탑문과 대열주실>

제3탑문은 많은 부분이 허물어져 그 너머로 대열주실 기등들이 보인다. 고대에는 매우 잘 만들어진 탑문이었으며 일부에는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멘호테프3세가 제3탑문을 세우기 전에는많은 기념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제3탑문 왼쪽(남쪽) 벽면>
<탑문 사이 안뜰(남쪽)>
<탑문 기둥에 새겨진 상형문자>
<제3탑문 오른쪽 벽면(북쪽)>
<북쪽 벽면 너머로 보이는 대열주실>
<탑문 부조벽화>
<탑문 뒷편 대열주실 벽면>
<탑문 사이 안뜰(북쪽)>
<바깥에서 본 제3탑문>
<안뜰 남쪽 출입문>
<출입문 옆 벽면>
<출입문 옆 벽면>

제3탑문 안뜰에는 투트모세 1세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높이가 21.2m이고 무게는 150톤 정도이다. 탑문 앞에는 1쌍 중 나머지의 오벨리스크의 일부가 남아 있다. 후대 왕들은 오벨리스크를 볼 수 없도록 그 주변에 높은 벽을 쌓았다.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 남쪽에서 본 모습>
<대열주실에서 본 모습(서쪽)>
<동쪽에서 본 모습>
<제3탑문 앞에 일부만 남아 있는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상형문자>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상형문자>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상형문자>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상형문자>
<남쪽에서 본 투트모스1세의 오벨리스크와 하트셉투스의 오벨리스크>

아멘호테프 3세 이전의 네 번째 탑 안뜰의 모습. 투트모시스 1세가 시작한 네 번째 탑은 이펫-수트로 알려진 아문 성소의 입구를 표시합니다. 탑 앞의 안뜰은 두 개의 수직 행렬 축, 즉 주요 동서 축과 보조 남북 축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멘호테프 3세가 이 안뜰을 재편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이미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투트모시스 2세는 우선 이집트 전역에서 도착하는 제물을 봉헌하기 위해 이 지역에 축제 안뜰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투트모시스 4세가 그 다음 큰 변화를 수행하여 네 번째 탑에 맞닿아 지어진 큰 금으로 덮인 현관과 안뜰 주변에 두 줄의 기둥을 추가했습니다. 안뜰에는 마침내 투트모시스 3세가 차례로 지은 주요 사원 축을 따라 세 쌍의 오벨리스크가 포함되었습니다.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시스 3세, 투트모시스 4세 또는 아멘호테프 2세가 지은 이 현관 안뜰에는 여러 개의 바크 예배당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야외 박물관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개의 망루 사이에 흥미롭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안내문, 카르나크신전, 2008년)

<출처>

  1. ‘Precinct of Amun-Re’, Wikipedia, 2024년
  2. ‘Great Hypostyle Hall’, Wikipedia, 2024년
  3. Karnak, Wikipedia, 2024년
  4. ‘크리스티앙 자크와 함께하는 이집트여행’,문학세계사, 2006년
  5. 안내문, 카르타크신전,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