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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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에 위치한 마애삼존불입상(국보)이다. 이 불상은 마애불상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사각형의 감실안에 보살상이 가운데 있고, 양쪽에 여래상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는 삼존불상이다. 오른쪽에는 약사여래, 왼쪽에는 석가여래, 가운데에 작은 크기의 관음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 아래쪽에는 백제시대 연화대좌가 확인되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불상의 얼굴은 상당부분 훼손되어 확인이 잘 되고 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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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백제와 충남지역 불교 문화
백제의 불교는 침류왕 때(384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東晉)으로부터 들여왔다. 백제의 지배층이 사회통합차원에서 국가적으로 불교를 적극 수용하게 된 것은 고구려의 압박을 받아 공주로 도읍을 옮긴 웅진백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성왕은 남조의 양나라로부터 불교 경전을 받고 기술자를 초빙하여 각처에 사찰을 세우고 등 불교를 크게 발전시켰다. 또한 태안과 서산의 삼존불상 등을 볼 때 중국 산동지방 불교의 영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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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공산성, 웅진기 백제의 왕성
공산성은 백제가 고구려의 압박에 밀려 공주로 도읍을 옮겼던 웅진백제기 왕성 역할을 했던 산성이다. 서울의 풍납토성과 마찬가지로 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즈막한 구릉이 둘러싸고 있어 작은 계곡을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원래는 백제의 다른 성곽처럼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석축성으로 고쳤다고 한다. 웅진기 백제의 왕성이었던 공산성 내에는 백제의 왕궁터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터 등이 남아 있으며, 연꽃무늬 기와를 비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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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백제의 웅진 천도
웅진기는 한강유역에서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밀려서 도읍을 웅진으로 옮긴 시기는 약 70년(475~538) 정도이다. 백제는 고구려의 압력으로 웅진으로 천도를 했지만 지방세력의 협조하에 비교적 빠른 기간내에 새로운 왕도를 건설하였다. 웅진기 왕성은 금강과 맞닿아 있는 공산성을 중심에 배치하여 군사적 기능이 중시되었다. 이 시기 백제는 신라와 혼인을 통해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 및 일본열도와의 관계도 강화하였다. 국가가 안정을 되찾은 무령왕대에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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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마한에서 백제로
마한연맹체는 천안지역의 목지국이 중심이었다가 고구려에서 남하한 세력과 토착세력이 연합한 한강유역의 백제가 중심이 되었다. 4세기 중후반경에는 마한지역 대부분이 백제에 완전 복속하게 되었으며 지방세력들은 백제의 귀족으로 그 세력을 유지하였다. 이 시기 한성백제에서 지방귀족세력에 협력의 표시로 보내준 금동관모,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 등이 서산 부장리, 공주 수촌리 등 다양한 지역 지배세력의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공주박물관에서는 한성백제기 지방세력과 중앙과의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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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무령왕릉실] 정지산 유적 출토 유물
정지산 유적은 송산리고분군이 있는 송산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가 웅진을 도읍으로 하던 시절에 제사시설이 있었다고 하며, 제사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무령왕릉 묘지석에는 무령왕과 왕비가 사망후 상당기간 이곳에서 빈전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가 웅진에 도읍을 정했던 기간은 비교적 짧았기때문에 실제로 많이 사용되었다는 볼 수 없다. 출토된 유물 또한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주 정지산 유적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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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무령왕릉실] 웅진백제기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유물
무령왕릉이 조성되었던 웅진백제기에는 중국 남조와의 활발한 문화교류가 있었다. 고분의 형태도 북조의 영향을 받은 고구려 석실분과는 달리 벽돌로 쌓은 전축분(塼築墳)이다. 또한, 출토된 유물 중에서도 중국 남조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 남조 양나라에서 발행한 동전인 오수전, 위세품 성격의 청동으로 만든 그릇 등이 있다. 또한 남조에서 성행했던 도교사상이 반영된 유물들 또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입구에 세워진 무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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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무령왕릉실] 무령왕비 관장식과 장신구들
무령왕릉에는 왕과 왕비가 나란히 누어 있었다. 묘지석에 따르면 왕이 죽은지 3년 후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령왕과 마찬가지로 금제관식을 비롯하여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무령왕과는 달리 큰칼 대신 작은 손칼이 3점 있었으며, 귀고리, 은팔지, 목걸이 등 장신구들이 상대적이 많이 놓여 있었다. 출토된 장신구들은 웅진기 백제의 뛰어난 금속 공예기술과 예술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무령왕비는 사비기 백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