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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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신 사당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이다. 고려시대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주향으로 안축, 안보, 주세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 주위로 담장을 둘렀으며, 앞과 옆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후대 서원의 사당과는 달리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최초 서원에 세워진 사당으로 ‘사(祠’자를 쓰고 있는 다른 사당과는 달리 ‘묘(廟)’자를 사용하고 있어 격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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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강학당(보물), 최초의 서원 ‘백운동’이란 현판이 걸린 건물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영주 소수서원 강학당”(보물)이다. 서원에서 교육기능을 하는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원 출입문이 있는 남쪽 기단에 계단이 설치하여 내부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선 중종때 주세붕이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안향을 모신 ‘백운동서원’을 세울때 강학공간으로 정의한 영역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건물 남쪽에 걸려있고,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 현판이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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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 역마를 이용하기 위해 지급받았던 패
마패(馬牌)는 조선시대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이 역마를 이용하기 위해 지급받았던 패이다. 구리로 만든 지름 10cm 정도의 구리로 만든 둥근 형태로 앞면에는 자호字號와 제작연월, 상서원인尙瑞院印을 새겼고 뒷편에는 관원의 등급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말의 수를 그림으로 표시했다. 고려시대에는 나무 호패였으나 파손이 심해 세종 때부터 금속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조선초기에는 왕명출납 기관인 승원원에서 발급했으나 <경국대전> 완성후 상서원이 마패 발금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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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예안이씨충효당(보물)
경북 안동 풍산읍 하리리(下里里)에 있는 고택인 “안동 예안이씨충효당”(보물)이다. 이 고택은 풍산천과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때 의병활동과 후손들의 효심으로 인해 국가로부터 ‘충효당(忠孝堂)’이라 이름을 하사받은 유서깊은 저택이다.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집은 넓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고 개방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풍산읍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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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목판 (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동여지도 목판”(보물)이다. 조선후기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만든 목판이다. 현재 12장의 목판이 남아 있다. 목판의 앞뒤 양면에 지도가 조각되어 있다. 목판 한면에는 남북으로 120리, 동서로 160리 범위의 지리정보를 표현하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전을 남북 120리 간격으로 구분해 22층으로 나누었다. 전체를 연결하면 세로 약 6.7m, 가로 약 3.8m의 대형지도가 된다. <대동여지도>는 현재 30여점이 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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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잉군 초상(보물), 젊은 시절 영조의 초상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연잉군 초상”(보물)이다. 21세의 젊은 영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영조가 왕세자에 책봉되기 이전에 그린 것으로 영조 때 경희궁 태령전에 봉안되었다가 정조 때 선원전으로 옮겨졌다. 불에 타서 일부가 소실되었지만 얼굴, 흉배, 관대 등이 온전히 남아 있다. 51세 때 그린 어진과 비교해서 보면 나이가 들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만 얼굴의 특징은 거의 비슷하다.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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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구한말 서울 종로에 세워졌던 비석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척화비”이다. 서울 종로에 세웠던 것을을 임오군란 이후 철거되어 묻혔다가 1915년 보신각 이전 시 발굴되었다. 척화비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대표하며, 쇄국정책은 후대 사람들이 조선의 근대화가 늦어지고, 멸망하게 된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아편전쟁 이후 피폐된 중국 청나라의 정세를 듣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당연히 취할수 있는 여러 정책 중 하나라고 보여지며 이를 폄훼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