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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어진 (보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영조 어진”(보물이다. 태조 어진과 함께 가장 익숙한 왕의 초상화이다. 영조 51세 때의 초상화이다. 정면을 향하지 않고 특이하게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이다. 1744년(영조 20) 장경주 등이 도사한 육상궁 냉천정의 영조 어진을 채용신과 조석진 등이 1900년에 다시 그린 초상화이다. 1744년(영조 20) 장경주 등이 도사한 육상궁 냉천정의 영조 어진을 채용신과 조석진 등이 1900년에 이모하여 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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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참외모양 병 (국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청자 참외모양병'(국보)이다. 개성시 고려 인종 장릉에서 인종의 시책(諡冊)과 함께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청자 전성기였던 12세기에 만들어진 참외모양을 하고 있는 청자병이다. 아가리부분은 활짝핀 참외꽃 모양을, 몸통은 참외 모양을 하고 있다. 장식이나 무늬가 없지만 청자고유의 빛깔과 단정하고 세련된 조형미로 당시 귀족들을 취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색과 완벽한 균형미를 잘 갖추고 있는 걸작으로 비슷한 형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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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음각연화당초문매병(국보), 연꽃넝쿨무늬매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청자 음각연꽃넝쿨무늬매병'(국보)이다. 고려시대 12세기에 만든 청자 매병이다. 작은 아가리와 풍만한 어깨와 몸통, 잘록한 허리 등 고려청자 매병에서 볼 수 있는 한국적인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몸통에는 연꽃넝쿨무늬가 음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맑고 투명한 회청색 유약이 고르게 씌워져 있다. 전남 강진 가마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비색청자로 잘 알려진 고려 순청자 전성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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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비로자나불입상, 9세기 통일신라 금동불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금동비로자나불입상’이다. 신라에서는 크기가 30cm 이하의 작은 금동불이 많이 만들어졌다. 불감(佛龕)에 안치하여 개인적으로 모시시거나 사리 대신 장리장엄구로 조성하였다. 이 금동불입상는 통일신라 때 많이 조성되었던 비로자나불입상의 전형적인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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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양진당(보물), 하회마을 종가집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있는 ‘하회 양진당(河回 養眞堂, 보물)’이다. 이 저택은 풍산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에서도 종택에 해당하는 고택으로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영(1539~1601)의 고택이다. 사랑채에는 ‘입암고택(立巖古宅)’고택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류운룡의 아버지이자 관찰사를 지낸 류중룡의 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양진당은 류운룡의 6대손으로 이 집을 크게 중건한 류영의 어릴때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원래 99칸 저택이었던 이 저택은 ‘ㅁ’자영 살림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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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천서원, 학봉 김성일을 모신 서원
경북 안동시 송현동에 있는 임천서원(臨川書院)이다. 조선중기 문신 학봉 김성일을 모신 서원이다. 류성룡을 모신 하회마을 병산서원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서원으로 1607년 임하면 천전마을 부근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여러차례 장소를 옮기고 구한말 훼철되었다고 복구하여 외관상 쇠락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구한말 순종 때(1908)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다시 지어진 것이다. 건물은 강당인 홍교당, 동재와 서재, 사당인 숭정사, 전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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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천등산 봉정사
경북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있는 봉정사(鳳停寺)이다. 신라 문무왕 때(682년) 능인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안동과 화회마을이 있는 풍산 그리고 영주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 불교를 이끌었던 화엄십찰이나 구산선문에 포함되지는 않지 안동 지역을 대표하는 큰 사찰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극락전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건축 양식을 고루 갖추고 있다. 각 건물들은 안동지역 한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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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포, 불랑기자포(보물)
불랑기포는 명나라에서 도입한 서양식 후장포이다. 포르투갈인에 의해 중국에 전해져 일본과 조선에서도 사용되었다. 문헌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에 평양성 전투에서 사용하면서 깊은 인상을 주었고, 징비록에는 불랑기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로는 서울 군기시터와 목동에서 임진왜란 이전 명종 때(1563년) 제작된 자포가 여러점 발견되어 그 이전에 국산화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재장전이 빠르고 적을 조준하기 쉬워 주력 화포로 자리잡았으며 구한말까지…